기존소설에 반항하는 소설이라는 뜻에서 ‘반(反)소설’이라는 단어를 정의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개인적으로 이상의 소설을 이 단어에 일치시키고 싶다. 전통적인 소설의 형식을 모두 뒤집어 버리고 이제껏 보지 못했던, 아니 앞으로도 다시는 보기 힘들 정도로 초월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탄성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상의 소설들은 현재는 물론 미래를 넘어서는 초월성을 지니고 문학적 영원성을 획득하였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수수께끼를 통해 불멸의 존재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불멸성을 획득하였다. 반복되는 단어들, 순차적으로 흐르는 단어들, 대립 관계, 모순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면, 순간적으로 발현되는 의식의 자동 기술이 만들어낸 문장과 극단적으로 파편화되어 흩어지는 의식의 흐름 등은 작품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혼란스럽게 만..
‘날개’라는 작품의 존재가 있었기에 이상의 천재성은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자신의 가치, 그리고 작품의 가치를 증명시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시인 이상’이 발표한 시는 지나칠 정도로 초월적 영역에서 최소한의 이해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소설가 이상’이 발표한 소설들은 사소설적인 요소와 실험적인 형식이 더해지면서 텍스트에 대한 해석을 복잡하게 만들고 말았다. 지나친 실험성으로 무장 된 소설은 작품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렸고 지나친 사소설적 경향은 이상 특유의 전율을 일으키는 느낌이 희석되어 다소 부족한 소설처럼 느껴진다. 때문에 보다 많은 이들이 이상의 작품세계에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특유의 초월적 형식의 자유로움으로 이상의 작품 세계가 지닌 ‘특이점’을 즐길 수 있는 ‘날개’와 같은 작품이 존재..
사라진 아내의 흔적을 더듬어가며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수수께끼를 간직 한 채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인다. 의문점은 커져가고 이야기가 흐를수록 또 다른 수수께끼를 대면하게 된다. 마치 추리 소설과 같은 형식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이면서도 철저하게 제한 된 정보만을 보여주며 해답을 알 수 없도록 전개해 나간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독자들은 진실과 마주치게 되고 오르한 파묵이 들려주는 검은 책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 된다. ‘수수께끼를 담은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이렇게나 많은 터키의 모습을, 이스탄불의 모습을 담아 내는 것이 가능하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검은 책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게 된다. ‘자신이 되지 못한 종족, 다른 문명을 모방한 모든 문명,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행복해..
토마스 만은 자신의 재능을 어떻게 펼쳐야 되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작품을 읽는 독자들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작품에 쏟아 부으며 ‘파우스트 박사’를 통해 다시 한번 독자들을 열광시켰으니 말이다. ‘위대한 것에 감탄하고 열광하고 압도당하는 것은 분명히 정신적 기쁨을 준다’고 작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토마스 만은 이 작품을 통해 엄청난 양의 외적인 정보들을 끌어들여 압박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가 특유의 사상의 부딪힘을 마음껏 펼쳐내었고, 철학과, 신학 외에도 예술 전반적인 것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집대성한 명제들을 나열하고 풀어나간다. 작가의 위대함에 감탄하고 작가의 사상의 부딪힘이 만들어내는 싸움에 열광하고 그가 담아낸 거대한 백과사전이 압축 된 것 같은 이야기에 압도당하며 좀처럼 이해하기 어..
우린 어떤 시대에 살고 있나요! 폭풍과 격동의 시대죠! 4대에 걸쳐 흐르는 부덴브로크 가의 가세는 모르는 사이에 쇠락해간다. 새로운 세상의 흐름 속에서 등장한 신흥 계층의 부상, 그리고 기존 계층의 몰락 속에서 격변하는 독일의 사회를 보여주듯 부덴브로크 가의 이야기는 한 가정의 파란만장했던 가족사를 통해 독일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었다. 그들의 결혼의 과정을 통해, 재산을 두고 벌어지는 갈등을 통해, 남성들의 지위와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투영하고 귀족, 신흥 부호, 중산층 등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난 독일 사회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배여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밀려날 수 밖에 없는 부덴브로크 가의 쇠락은 어떤 극적인 사건을 겪거나 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럽게 조금씩 기울어가는…..
토마스 만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마의 산’의 등장은 필연적일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토니오 크뢰거와 트리스탄 그리고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합친다면 결과는 ‘마의 산’이 되지 않았을까? 토마스 만의 중.단편 ‘토니오 크뢰거’, ‘트리스탄’, ‘베니스에서의 죽음’을 읽고 있으면 마치 ‘마의 산’이라는 역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다. 이후 토마스 만이 압도적으로 펼쳐낼 ‘마의 산’의 전초전이자 프리퀼적인 성격, 그리고 마의 산을 집필하기 위해 중.단편을 통해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각각의 작품들은 개별적으로 독립 된 토마스 만의 중.단편이지만 하나로 엮어 놓게 된다면 마치 마의 산에서 파편화되어 제각기 새롭게 탄생된 작품처럼 느껴진다. 토마스 만 특유의 압박감은 물론이고 이후 마의 산의 무대가 되는 베르크..
제임스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통해 아일랜드를 영원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백년의 고독’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모습들을 영원히 기억시켰다. 귄터 그라스는 ‘양철북’을 통해 전쟁 전후의 독일의 역사를 담아내었다. 그리고 살만 루슈디는 ‘한밤의 아이들’을 통해 인도의 현대사의 아픔을 책 속에 압축시켰다. 내가 태어나던 날부터 나의 운명은 우리나라의 운명과 하나로 이어졌다. 자정은 수많은 아이들을 낳았다. 독립의 자식들 중에는 인간이 아닌 것들도 있다. 폭력, 부패, 빈곤, 장군들, 혼돈, 탐욕, 후추통... 그러나 또한 아무도 복원할 수 없을 만큼 현실을 심하게 손상시킨 한 시대의 자식이기도 했다. 살만 루슈디의 마술적 리얼리즘은 인도라는 나라에게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 너무..
살만 루시디는 환상 소설의 묘미를 어디까지 끌어올리고 싶었던 것일까? 비행기 추락사고라는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두 남자의 기이한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악마의 시’를 읽는 동안 느끼는 감정들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환상적인 체험이였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현실 위에서 환상을 더해 들려주는 이 작품은 언어적 장벽, 문화적 장벽, 종교적 장벽 등 작품에 대한 이해와 몰입 과정에서 많은 장벽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물론 작품에 대해 깊이 파고 들면 들수록 난해한 작품인데다가 여러가지 언어적 장난이 많고 수많은 배경지식을 요구하지만 작품을 읽어나가는 동안만큼은 환상 소설의 묘미를 즐기게 된다. 곳곳에 숨어 있는 장난에 놀아나고, 유쾌한 황당함으로 사로잡..
살인자는 누구인가?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궁금증을 키워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범인은 누구일까?’라는 의문은 어느 틈엔가 희석되고 작품 속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그림들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살인자의 정체에 대한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되고 오르한 파묵이 들려주는 신비하고 낯선 세상 속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터키의 시간을 되돌려서 오스만 제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작품의 배경은 이슬람의 민담과 전설, 그리고 독특한 생활양식과 정서를 녹여내면서 독자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것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낯설기만 한 세계, 낯설기만 한 경험… 국내의 독자들이 접하는 ‘내 이름은 빨강’의 이야기는 새롭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작품이 펼쳐낸 익숙하지 않는 문화와 정서, 그리고..
난장판이야, 역겨운 난장판이야! 이런 난장판은 평생 구경하지 못할거야. -네이키드 런치 본문 中- 윌리엄 S.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위와 같은 문장으로 요약하고 싶다. 혼란과 혼돈을 뛰어넘는 난장판으로 구성되어 마치 마약 복용후의 환각 상태에서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망상 속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문장들, 이해 불가능한 단어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계속해서 끊어지는 전개와 단속성은 작품에 대한 자꾸 작품에 대한 맥락을 놓치게 된다. 집중력을 유지하고 싶어도 자꾸만 흩어지게 만들어 버리며 작품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한다. 미술에서 말하는 ‘콜라주’처럼 자르고 붙인 서술형식은 작품에 대한 어지러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다양한 형태로 찢어지거나 잘라진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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