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설(novela)이 아니라 소셜(nivola)이다. 미겔 데 우나무노는 ‘안개’를 통해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소설(novela)이라는 정의 대신 소셜(nivola)이라는 단어로 규정하고 있다. 기존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를 통해 소설의 개념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하고 새로운 형태로 구현하면서 자신의 작품의 문학적 영원성을 획득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같은 문학적 영원성의 획득은 동시에 작가 자신의 존재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우나무노는 마치 ‘안개(niebla)’같은 소설을(작가는 작품 속에서 소설이 아니라 소셜이라고 강조한다.) 그려나간다. 내용적인 기이함이 아니라 형식적인 형태의 기이함을 통해 특이성을 강조하고 픽션의 세계를 부셔버리는 메타픽션의 형태를 자유롭게 그리고..
우리는 알지 못하는 삶의 영역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소설들을 읽는다. 이란에서 태어나 아프리카에서 자랐으며 14살에 학교를 그만 둔 소녀, 노동당 활동을 하고, 사무원과 기자 등의 직업을 거치며 공산당원으로 가입하였던 여성, 이른 결혼만큼 이른 나이에 이혼을 하였고 본격적인 소설가로 활동하면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영국인… 실제로 그녀의 삶의 여정은 평범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폭넓은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그녀의 삶의 경험들을 독자들에게 느끼게 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인종의 차이와 종교의 차이, 문화의 차이가 만들어 내는 갈등은 물론이고 냉전시대로 이어진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만들어낸 부조리한 상황과 여성이기 때문에 따라다닐 수 밖에 없었던 수식어를 대하는 느낌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 ..
운수 좋은 날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제목에서부터 시작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복선을 통해서, 그리고 교과서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정석적인 연출과 전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추 될 수 있는 결말은 문학의 감상보다는 국어 시험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서민의 삶의 비참함을 진한 애수를 담아서 풀어나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시대의 모습을 재현하기 때문에 문학적 가치에 충실하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소설의 이론적인 예시를 설명할 때 가장 교과서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수업내용으로 접하게 되며,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재생산되면서 은연중에 머리 속에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운수 좋은 날’이라는 ..
실제의 역사적 바탕을 통해 쓰여진(또는 구술 된) 기록을 소설이라는 픽션의 형식을 통해서 구현한다면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게 될까? 기록이 만들어내는 다큐멘터리적인 성향의 리얼리즘과 소설이 자아내는 이야기의 매력이 더해지면서 문학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문학적 가치 이상의 것들을 전해주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헤르타 밀러는 ‘숨그네’라는 작품을 통해 2차 세계대전 당시 루마니아에 살고 있는 독일인들이 소련의 강제수용소에서 생활하였던 사실을 바탕으로 실존하는 생존자의 이야기를 그려나간다. 1953년에 태어난, 그러니까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작가 자신은 직접적인 체험을 하지 않았지만 직접 또는 간접적인 체험을 통해 시대의 숨소리를 담아내었으며 그 숨소리는 생생한 현장감을 지니면서 현재의 공기와 함께 하기 시작..
인류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빠르게 진보해 간다고 한다. 과학은 물론이고 사회전반에 걸쳐 의식이 깨어나고 문화 영역 전반에 걸쳐 성숙되고 향상 된 형태로 등장하거나 혁명적이고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소설 속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마르탱 뒤 가르의 티보가의 사람들을 읽으면서 놀라게 된다면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경계로 작품 속에서 펼쳐지는 엄청난 시대의 이야기를 중반 이후부터 철저하게 압축시키고 폭발시켰다는 점이다. 문학적 재능을 지닌 한 소년의 성장기, 또는 티보가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가족물로 생각했던 이야기는 1914년이라는 작품의 시대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형태의 작품으로 바뀌어 버리게 된다. 티보가의 이야기는 변함없이 흐르지만 그들을 ..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에 공통 된 세계관으로 등장하는 ‘요크나파토파’는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들을 탄생시켰고 그 이야기들이 모이면서 하나의 거대한 가상의 세계를 구축하였다.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 세계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사라져버린 미국 남부 사회의 역사와 생활이 고스란히 반영 된 세계이기도 하다. 마치 과거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는 박물관처럼 윌리엄 포크너는 미국 남부 사회의 사상과 정서를 요크나파토파라는 공간과 시간 위에 녹여내면서 사진이나 영상만으로는 재현하기 어려운 무형의 부분까지 보존시켜 요크나파토파 사가(Saga)를 이룩하였다. 윌리엄 포크너는 요크나파토파에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져 올렸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요크나파토파의 세계는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크너의 ..
질렸어!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 그리고 언제나 비슷한 소재를 한결 같은 분위기로 서술해 나간다면 처음 접했을 때 참신하게 다가올지 몰라도 반복되다 보면 조금씩 독자들에게 다가서면서 한계를 느끼게 되고 작가의 클리셰로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처음만큼 독자들에게 충격을 가져다 주기는 힘들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 그리고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의 최고 걸작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탄생되기 보다는 오히려 작가 인생 중반 경에 탄생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일부 작용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압살롬, 압살롬!’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막연하게나마 이런 불안감이 느껴진다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요크나파토파’로 대표되는 윌리엄 포크너의 독자적인 세계관 속에 이식 된 미국 남부 사..
세상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 서유기! 오직 그림만으로 독자들을 압도할 수 있는 작가가 있다면 테라다 카츠야가 빠져서는 안될 것이다. 펜선은 물론이고 컬러링까지 테라다 카츠야의 그림은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으로 깊숙히 자리 잡게 된다. 그림에 힘을 실을 수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가 가진 독특한 화풍은 테라다 카츠야만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강력한 고유함을 지닐 수 있었다. 이 같은 그로테스크한 화풍은 ‘서유기’의 세계관과 더해지면서 세상에서 가장 그로테스크한 서유기로 탄생될 수 있었고 ‘서유기전 대원왕’이라는 작품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킬 수 있었다. 테라다 카츠야판 서유기라고 할 수 있는 ‘서유기전 대원왕’은 서유기라는 작품이 지니고 있는 환상적인 세계관과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천재성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결국 광기로 물들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천재성이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연적인 기회와 만남을 가져야만 하는 것일까? 세상에서 다시 보기 힘들 정도로 천재성을 극대화 되어 발현 된 예술품을 탄생시키기 위해서라면 범죄도 허용 될 수 있는 것일까? 김동인은 ‘광염소나타’를 통해서 타고난 천재성과 우연한 기회의 만남이 탄생시킨 예술의 가치를 두고 의문점을 던진다. 범죄라는 행위와 필연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위대한 예술의 탄생을 통해 예술의 가치를 어디까지 둘 수 있는지, 그리고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키기 위해서 도덕적 윤리적 일탈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시한다. 한 평론가의 회상을 통해 이야기 되는 한 천재 예술가의 이야기는 또 다른 화자의 이야기와 결합되면서 광염소나..
"우리는 모두 신의 오발탄(誤發彈)인지도 모른다.” 목표로 했던 위치를 향해 발사되지 않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떨어진 오발탄처럼 해방 이후 전쟁을 거치며 오랜 시간 동안 서민들은 갈 곳을 잃고 삶의 목표를 향해 오발탄을 날릴 수 밖에 없었다. 타의에 의해 분단 될 수 밖에 없는 민족의 역사,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지속되는 냉정 시대의 축소판으로 상징되는 대한민국은 온통 오발탄 같은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다. 삶의 목표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알고 있음에도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 처음부터 목표를 찾지 못한 채 의미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사람들 등 저마다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듯 이범선의 오발탄은 시대의 그림자들을 담아 독자들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해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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