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작품을 집필한다는 사실이 놀라움 따름이다.” “아니야! 그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집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인 감상을 말하기에 앞서 밀란 쿤데라가 1929년생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일반적으로 작품을 감상하는데 있어 최대한 외적인 정보를 배제하는 방향을 선호하는 편이지만 이번 작품만큼은 밀란 쿤데라의 나이를 인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의미의 축제”와 비슷한 곳에 두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나보다 많은 삶은 살아온 쿤데라가 제시한 삶의 방정식을 내가 풀기에는 버거운 것일까? 내가 쿤데라의 나이가 되었을 때 이 책을 다시 한번 읽게 된다면 깊은 공감을 하게 될 것인가? 모르겠다. 적어도 이 작품을 다 읽은 지금 쿤데라..
삶이라는 것은 우연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연이라는 계산할 수 없는 변수와 모순적인 함수를 거치면서 결국 나오는 해답은 죽음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삶의 영역을 탐구해가기 위한 함수를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밀란 쿤데라는 삶이라는 것을 수학으로 가정할 때 함수의 역할은 소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별의 왈츠’에서 일어난 한가지 삶의 우연은 루제나의 임신이다. 그리고 루제나의 삶의 결과는 죽음이 된다. 그렇다면 그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식으로 전개되었을까? 수많은 삶의 영역은 개인에게 있어서 저마다의 고유한 부분들이 있지만 예기치 않게 다른 이들과 공유하게 되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고, 작은 파장은 엄청난 결과를..
“프라하는 악(惡)의 도시이다.” “체코 민중은 자신의 죽음과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을 깡그리 망각할 때까지 되풀이된다.” “민중을 일소하려면, 먼저 그들의 기억부터 지워야 해. 그래서 민중의 책,문화,역사를 파괴하는 거야. 그 다음 다른 사람을 시켜서 새 책들을 쓰게 하고, 새 역사를 지어내도록 해야 하지.” 밀란 쿤데라에게 있어 체코는 불명의 가치를 지닌 국가일지도 모른다. 망각으로 잊혀지지 않도록 웃음으로 사라지지 않도록 짧은 이야기를 이어가며 끊임없이 사상의 침범을 받은 체코의 이야기, 사상의 영향을 지닌 체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이미지를 반복하고 자신의 생각을 투영시킨다. 웃음으로 그리고 망각으로 마지막에는 웃음과 망각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에로티..
‘정체성’을 읽으면서 특징적인 것을 느끼게 된다면 그 중 하나는 모호함 일 것이다. 특히 어떠한 단어를 규정함에 있어서 사전적인 정의를 내리기 보다는 감성적인 단어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이 때 사용되는 단어는 관념적이고 모호하다. 마치 시와 같은 함축성을 지니면서 생각의 우물을 끌어올리게 만든다. 소설을 진행함에 있어서 명확하게 구분되고 확실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이미지들을 텍스트로 추상화시킨다. 때문에 큰 사건이나 풍부한 이야기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이라는 소설은 풍부하게 느껴진다.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한 박자 쉬어가게 된다. 이 같은 모호함은 ‘정체성’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의해서 소설의 느낌을 완성해 나간다. 그리고 이 것은 ‘정체성’..
쿤데라는 냉전시대를 기나긴 3차 대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향수’는 3차 대전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향을 떠나 오랜 망명 생활 동안 자신의 존재를 지켜왔던 이들이 3차 대전이 끝난 후(소련의 붕괴와 함께 이루어진 냉전 시대의 종결) 다시 한번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이들이 느끼는 ‘향수’는 각각의 존재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그려나간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어떤 형태로 삶의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과거의 기억들은 얼마나 많이 재생 될 수 있고 또 얼마만큼 망각의 형태로 잊혀지게 되는지 보여준다. ‘향수’와 ‘망명’…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체제하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버린 두 단어는 밀란 쿤데라의 손을 거치면서 곳곳에서 충돌하기 시작한다. 정작 작가자신은 정치적 해석..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버렸는가?” ‘느림’이라는 소설의 분량을 상대적으로 평가할 때 긴 분량이라고는 하기 힘들다. 장편 소설 치고는 상당히 적은 분량이다. ‘느림’을 읽어나가는 시간 또한 그렇게 오랜 시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느리게 진행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게 되고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읽고 싶어진다. ‘느림’이라는 작품의 제목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독서의 즐거움이 함께 하는 것이다. ‘느림’의 이야기에는 기승전결로 이어지는 소설의 구조를 취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인물, 사건, 배경을 위주로 전개해 나가지 않고 외적인 화자의 액자 속 이야기와 또 하나의 액자식 이야기를 병치시켜 특별한 사건을 중심으로 짜여진 이야기 대신 각각의 세..
시지프 신화 실존주의와 부조리에 대해서 이야기 하라고 하면 상당히 곤란함에 처하게 되겠죠. 이런 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간단하게 정리하면 저도 부조리와 실존주의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입니다. 다만 막연하게나마 개념의 끄트머리를 잡고 미약하게나마 파악하는 정도는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뿐이죠. 개연성이 끊어지고 논리적 회로 또는 세계가 파괴되는 경우와 우연적 상황에 던져진 존재에 대한 가능성의 영역을 탐구해 나갈 때 까뮈의 작품은 묘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때문에 시지프 신화를 통해 부조리와 실존주의에 대한 까뮈의 에세이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데 있어 좋은 갈잡이가 되지 않으까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떡밥의 미학으로 놀라움을 선사하는 카프카에 대한 까뮈의 생각이 있어 다른 의미로도 상당히 길잡이 ..
밀란 쿤데라는 소설가로서의 자신은 자신이 쓴 소설의 그림자 속에 감추어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같은 바램이 이루어지기는 무리였던 것 같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쿤데라의 필모그래피가 자연스럽게 겹쳐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읽으면서 쿤데라의 그림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있어서 이런 가정은 무의미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누구도 아닌 쿤데라의 아이덴티티와 오리지널리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쿤데라의 그림자를 걷어내기란 불가능이 아닐까? 한 시인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담고 있는 ‘생은 다른 곳에(삶은 다른 곳에)’는 쿤데라의 자전적 삶이 녹아 들어간다. 쿤데라 자신의 삶의 궤적과 일치시킨 것은 아니지만 쿤데라의 삶과 주변 환경, 쿤데라..
“지금 당신이 한 말들은 모두 지나치게 피상적이예요.” 쿤데라의 이야기는 모호하다. 이야기가 모호하고 표현방식, 문장에서 선택되는 단어의 의미가 모호하다. 인물에 대한 묘사도 명확하지 않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불친절하게 때문에 끊임없이 사고할 수 밖에 없는 아니 사색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로 다가오게 된다. 장면에 대해 세밀하게 묘사하는 경우가 없고, 치밀하게 짜여진 듯한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크로키를 보듯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이미지로 관념적인 단어들로 채워놓는 경우가 많다. 쿤데라가 만들어내는 모호함은 중첩되고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다성적인 의미들로 엮어진다. 허술하게 이어진 듯한 장면은 보이지 않는 생략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계속되는 사색의 과정을 거치며 풍부한 이미지를 스스로 만들어내게..
밀란 쿤데라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소설의 기술’을 읽으면 아마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에 대해 놀라는 것에 앞서 쿤데라의 작품에 상당히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이토록 치밀하게 구성하고 소설의 완성도를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풍부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밀란 쿤데라의 작품이 굉장히 부담스러워지게 됩니다. 높고 낮음, 강함과 약함, 길고 짧음 등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읽는 방법에 있어 독서의 리듬과 타이밍 감각까지 고려해서 구성하는 치밀함은 물론이고 다층적, 복합적, 그리고 다성적으로 구성하기 위해 소설이라는 형식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쿤데라의 작품을 재미있게 읽었을 지라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소설을 제대로 읽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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