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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네이키드 런치

sungjin 2012. 10. 8. 22:38



난장판이야, 역겨운 난장판이야! 이런 난장판은 평생 구경하지 못할거야.
-네이키드 런치 본문 中-


윌리엄 S.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를 읽고 난 후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위와 같은 문장으로 요약하고 싶다. 혼란과 혼돈을 뛰어넘는 난장판으로 구성되어 마치 마약 복용후의 환각 상태에서 영원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망상 속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 알 수 없는 문장들, 이해 불가능한 단어들,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 계속해서 끊어지는 전개와 단속성은 작품에 대한 자꾸 작품에 대한 맥락을 놓치게 된다. 집중력을 유지하고 싶어도 자꾸만 흩어지게 만들어 버리며 작품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한다.

미술에서 말하는 ‘콜라주’처럼 자르고 붙인 서술형식은 작품에 대한 어지러움을 더욱 가중시킨다. 다양한 형태로 찢어지거나 잘라진 조각들이 이리저리 마구잡이로 모이면서 하나의 작품을 이루게 되는 콜라주처럼 네이키드 런치의 이야기 역시 이리저리 파편화되어 있는 이야기들이 모여서 하나의 작품을 이루게 된다. 특히 기존에 서술된 문장, 문단을 그대로 잘라내어 반복해서 붙이는 형식을 통해 서술의 형태에 있어서도 독특하고 초월적인 연출을 보여주었다. 특이한 형태로 작품을 완성시켜 같은 문장, 문단이라도 이야기의 맥락이나 순서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듯 네이키드 런치에서 보여준 콜라주 기법은 제각각 의미를 달리하며 작품을 혼돈으로 몰아넣게 된다.

네이키드 런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약과 섹스로 채워져 있다. 그것도 다시는 읽기 싫을 정도로 역겨운 이야기들로 말이다.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불쾌함의 극을 경험시켜 주고 누군가에게는 소름끼칠 정도로 섬뜩함마저 선사한다. 어디까지 환각이고, 현실인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환각상태의 이미지로 다가오는 수많은 이야기들 대부분이 상상을 초월하는 하드 코어에 가까운(아니 하드 코어를 넘어선 곳에 있는 초극단적인-최소한의 도덕성마저 파괴된 윤리의식조차 느낄 수 없는 이야기, 상상만으로도 눈을 감고 싶은 잔혹성이 극대화된 이야기) 형태로 이미지화되어 있다.

네이키드 런치는 보고서의 형태를 보이는가 하면 에세이의 느낌, 짤막한 단편 소설, 콩트 등의 형태를 모두 담아내고 있다. 독특한 실험적 기법, 파격과 신선함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 작품에서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만일 두 번 다시 책장을 펼쳐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면 결국 마약과 섹스로 얼룩진 그것도 환각상태의 혼돈과 같은 이야기들의 코어한 내용들 때문이 아닐까?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 끌릴 수 밖에 없다면 역시 파격적이고 독특한 서술 기법과 연출, 특히 단어나 문장의 수식에 있어서 기묘한 느낌을 살려내는 맛이 있기 때문이겠죠. 물론 네이키드 런치를 ‘마약에 관한 보고서’ 단정짓고 환각의 체험을 소설화했다는(이 작품의 시점의 전환이나 이야기의 단속성이 계속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마약을 한 환각상태의 느낌을 고스란히 재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점에서도 독특하고 특이한 경험을 시켜주는 매력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 역시 마약을 통한 환각상태에서 읽었을 때 제대로 된 감상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검열을 통과하고 관료들 사이를 비집고 나갈 수 있는 것은 바로 성(性)이야.

통신 자체가 어떤 실용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단지 좀 더 많은 통제를 가져올 뿐입니다.... 마치 마약처럼...

-네이키드 런치 본문 中 -


PS2 이 작품은 곳곳에서 날카로운 파고드는 유머러스함이 돋보입니다. 아마 제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어떤 작품보다 과감하고 자유롭게 날카로운 메스를 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자유롭게, 그리고 예리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세포의 가장 완벽한 상태는 암이지. 민주주의는 암적이며, 모든 관료주의가 민족주의의 암이야.
관료주의는 국가의 모든 곳에 뿌리를 내리고 마약단속청처럼 악성으로 변하기도하고, 점점 더 크게 자라서 자신과 비슷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숙주를 통제하거나 제거할 수 없다면 아예 그것의 숨통을 죄어 버리지.

관료주의는 숙주 없이는 자랄 수 없는 완벽한 기생조직이야.(반면 공생은 숙주가 없으면 살 수 없지. 우리는 바로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그 조직의 기능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독립적인 단위 조직을 만드는 것. 반대로 관료 조직은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필요를 창출하지.)

관료주의는 암적인 존재로 무한한 가능성, 분화, 그리고 독립적이면서도 자발적인 행위는 지향하는 진화의 방향을, 바이러스와 같은 완벽한 기생주의로 바꿔놓았지.

-네이키드 런치 본문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