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혼의 불멸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이름이라도 남기기를 원하지. 이름 속에서 우리가 이야기되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서 영원한 삶을 얻으려는 거야. 어찌 보면 불쌍한 인생이지.” “예술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영원불멸에 대한 목마름에서가 아닐까?” 우나무노에게 있어서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예술을 통한 불멸을 획득하는 것이였을까? ‘사랑과 교육’에서 작가는 표면적으로는 물론이고 은연 중에서도 예술이라는 가치를 통해 이름을 남기는 것에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천재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평범한 여성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다방면에 걸쳐 학문을 주입한다. 주변의 환경적 요인이 끊임없이 천재를 육성하기 위한 압박을 하게 되지만 결국 아이는 실험을 받는 몰모트가 아니라 하나의 자아로서 자..
소설을 쓰는 과정에 있어서 작가의 생각들이 투영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나무노의 작품에서 이 같은 경향은 더욱 더 주목 받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장편 소설만이 아니라 단편 착한성인 마누엘과 중편을 통해서 읽어낸 우나무노의 생각들은 이야기의 중심이 아니라 생각의 중심으로 시선을 고정하게 되고 착한 성인 마누엘의 이야기나 뚤라의 이야기 대신 우나무노가 평생에 걸쳐 생각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라는 테마는 우나무노에게 있어서 평생 동안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문제다. 논리와 이성을 넘어선 곳에서 판단할 수 밖에 없는 ‘죽음’은 ‘착한 성인 마누엘’에서 ‘종교’라는 테마가 합쳐지면서 죽음과 종교의 관계가 만들어낸 믿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현실과 ..
쿠빌라이 칸과 마르코 폴로의 대화는 환상의 문을 열고 독자들을 꿈속으로 안내한다. 이 세상의 도시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몽환의 도시들이 차례로 펼쳐진다. 마치 스케치를 하듯 보이지 않는 도시들은 상상력만으로 이미지화되어 이탈로 칼비노가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환상적인 그림들을 텍스트로 구현한다. 특정한 줄거리도 없이 오직 도시의 이미지들을 스케치해나가는 것 만으로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드는 신비로움을 책 속에 담아낸 것이다. 텍스트로 구현된 도시의 이미지들은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보다 구체화되고 기묘한 감각들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신비롭다. 경이롭다. 등의 단어와는 다른 또 다른 환상 속을 거닐고 다니는 듯한 감각같다. 알 수 없는 상징성과 복잡하게 구성된 알레고리는 칼비노 특유의 마술 같은 현실감이 ..
“손님 요금이 너무 적은 것 아닙니까?” “몸이 반쪽 밖에 없잖아요! 당연히 요금이 적을 수 밖에요.” 반쪼가리 자작의 이야기는 선악의 개념에 대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전쟁 중에 반토막이 난 몸은 각각 선과 악으로 분리되면서 악한 행동과 선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선과 악으로 분리 된 몸은 명확한 구분을 가지고 선과 악으로 상징된 역할에 충실하게 행동한다. 악으로 된 몸은 당연히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지만 문제는 선으로 된 몸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지나친 선행이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워지고 불편하게 된다.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분리되어 떨어져서는 안 되고 함께 양립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이탈로 칼비노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이..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 홧김에 나무 위에서 살게 된 소년은 죽을 때까지 나무 위에서 살았습니다.” ‘나무 위의 남작’을 읽으면서 반할 수 밖에 없다면 바로 주인공의 존재다. 오직 나무 위에서만 생활하며 독립적이고 독자적인 자신의 고유한 세상을 구축하고 살아간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나무 위에서 완성해낸 나무 위의 세상은 땅 위에서 아주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에 현실과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남들보다 높은 곳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자신만의 고유한 세상을 구축했지만 고립되고 폐쇄된 세계가 아니라 세상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보다 좋은 방향을 제시한다. 자신만의 세계 속에 갇혀있지 않고 다른 세상으로 확장하고 뻗어나가면서 누구보다 가장 열심히 세상의 흐름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여기에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데 이렇게 확실한 존재감을 보이는데? 존재하지 않는 기사의 이야기는 환상적이다. 치열한 검들의 부딪힘 속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중세의 배경을 바탕으로 명예를 위해 싸우는 기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러한 기사도는 없다. 이탈로 칼비노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를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 육체도 없이 텅빈 갑옷 속에서만 존재하는 기사, 의지만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자신의 가치를 납득하지 못하는 순간 사라져버리고 마는 존재하지 않는 기사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복수를 위한 목표만으로 닥치고 돌격할 줄 밖에 없는 청년의 모습에서 무엇을 투영시키고 싶었던 것일까? 질서로 이루어진 사회 속에서 무질서를 ..
“카인의 영혼은 질투의 영혼이야.”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호아킨과 아벨의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난다. 신화 속에 등장하는 환상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내리고 인간의 삶 속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는 우나무노의 생각들이 무서울 정도로 강렬하게 펼쳐진다. 짧지만 인상 깊은…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파고 들어갈수록 무거운 이야기와 생각들로 구성 된 아벨 산체스는 이야기의 힘이 줄거리나 플롯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같은 이야기라도 아주 약간만 비틀고 보는 위치만 달리해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현대판 카인과 아벨’로 단순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이 작품은 수용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운 테마를 담아내고 있다. ‘질투’라는 현대인들의 숨겨진 본성의 단면을 들추어내고 철저하게 파헤치면서 카인과 아벨이라는 구..
무(無)에서 무한(無限)까지… 이탈로 칼비노의 ‘우주만화’를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경이로움은 작품에 대한 경이로움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한 경이로움이고 우리들 자신에 대한 경이로움이다. ‘우주만화’에서 전해주는 신비로움은 이 소설에 대한 신비로움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신비로움이며, 우리들 자신에 대한 신비로움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놀라움은 작가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존재하는 이곳이며 우리가 살아온 시간의 흐름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소설을 통해서 완성해 낼 수 있는 가장 무한한 상상력의 경이로움, 신비로움, 놀라움을 담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소설에서 담아낸 이야기들은 허구가 아니라 철저하게 과학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실재라는 것이다. 지구의 탄생, ..
“만일 꿈이 계속된다면요?” 보르헤스가 작가생활 후기에 발표하였던 단편들을 모은 ‘셰익스피어의 기억’은 다시 한번 보르헤스의 지적압축과 환상의 극한을 추구하면서 독자들을 단숨에 매료시킨다. ‘셰익스피어의 기억들’에서 펼쳐낸 보르헤스의 환상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모두 걷어버린다. 애드거 알렌 포의 단편에 그토록 찬사를 보냈으며 천일야화에 그토록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이유도 보르헤스가 추구하는 작품의 목표에는 언제나 환상이 함께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보르헤스의 작품이 전해주는 환상들은 독자들까지도 매료시킬 수 있었다. 보르헤스의 작품이 지적인 압축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제까지의 소설의 형식을 부수고 새로운 형태로 완성해 내면서 감상하기에 굉장히 어려움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보르헤스의 작품에 반..
‘작가’와 ‘칼잡이들의 이야기(브로디의 보고서)’로 구성되어 있는 보르헤스 전집의 네번째 단행본은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지적압축의 힘을 배제하고 환상적인 요소를 약화시켜 조금은 쉬어갈 수 있는 이야기들로 구성하고 보르헤스의 힘을 증명시켜주었다. 마음만 먹으면 도저히 풀수 없는 수수께끼들로 가득 채우고 혼란스러움의 극으로 몰아붙일 수도 있으며, 학문의 극한에서 이해는 커녕 읽어나가는 것조차 힘들게 만들 수 있는 작가지만 픽션들-알레프에서 보여주었던 환상과 학문의 압축을 한층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대신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을 통해 보르헤스의 단편이 지닌 경이로움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었다. 전통적인 이야기의 흐름 대신 기록의 형태를 지니고 있는 ‘작가’에서는 기승전결의 구조를 취하는 대신 특정한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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