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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운수 좋은 날

sungjin 2012. 12. 9. 10:38


운수 좋은 날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제목에서부터 시작되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복선을 통해서, 그리고 교과서적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정석적인 연출과 전개를 통해 자연스럽게 유추 될 수 있는 결말은 문학의 감상보다는 국어 시험을 위해서 필수적으로 학습하게 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서민의 삶의 비참함을 진한 애수를 담아서 풀어나간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은 시대의 모습을 재현하기 때문에 문학적 가치에 충실하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소설의 이론적인 예시를 설명할 때 가장 교과서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학교에서 배우게 되는 수업내용으로 접하게 되며,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수많은 매체를 통해서 재생산되면서 은연중에 머리 속에 각인되는 경우가 많다.

‘운수 좋은 날’이라는 작품에 대해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문학을 즐기는 순수함보다는 보다는 학습에 대한 목적성이 강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평가하자면 손을 꼽을 정도로 훌륭한 작품인데 운수 좋은 날의 가치를 독서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전해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공부를 위해서, 시험을 위해서라는 목적에 가리워져 이 작품의 참 맛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만큼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짧은 지면 위에서 삶의 유쾌함, 비참함 등 다양한 단면들을 투영시키며 깊은 여운을 남기고, 소설이라는 이야기의 형식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미학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비가 내리는 배경, 비로 인해 질퍽해진 땅, 오늘을 집에 있으면 좋겠다던 아내의 대사, 집으로 가까워 질수록 무거워지는 발걸음 등 작품의 전체에 걸쳐 불안한 상황을 만들고 점차적으로 긴장감을 상승시켜가며 단숨에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하루하루 힘겨운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작은 즐거움, 이른바 ‘오늘은 평소보다 매우 많은 돈을 만지게 된다’는 지극히 소시민적인 행복을 통해 삶의 즐거움, 기쁨 등 긍정적인 모습들 반영시킨다. 동시에 평소의 비참한 서민들의 생활상이 반영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의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고, 인력거꾼이라는 시대적 상징물을 통해 철저하게 압축된 우리 시대의 그림자와 짙은 애수를 담아내고 있다. 걸쭉한 대사에서 느껴지는 현장감은 작품의 사실성과 실재성을 강화시켰고 시대의 공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동시대의 이미지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생생한 느낌이 살아 있는 김첨지의 운수 좋은 날은 어딘가의 환상이 아니라 우리들의 이야기처럼 다가올 수 있었고 시대의 아픔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올 수 있었다.

만일 ‘교육’의 목적으로 ‘운수 좋은 날’을 접해야 했다면 이번에는 ‘독서의 즐거움’을 위해 다시 한번 ‘운수 좋은 날’을 읽었으면 바란다. 김첨지의 이야기 속에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겹쳐내면서 가슴 깊이 느껴보도록 하자.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데 읽을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은 가지지 않았으면 한다. 정말로 좋은 작품은 내용을 알고 있어도, 다시 읽게 되더라도, 세월이 지나면서 옛 것이 되어버렸더라도 변하지 않는 재미와 감동을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올 수 있는 성장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물론 ‘운수 좋은 날’은 여기에 포함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