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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압살롬, 압살롬!

sungjin 2012. 11. 18. 16:29



질렸어!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 그리고 언제나 비슷한 소재를 한결 같은 분위기로 서술해 나간다면 처음 접했을 때 참신하게 다가올지 몰라도 반복되다 보면 조금씩 독자들에게 다가서면서 한계를 느끼게 되고 작가의 클리셰로 이미지가 굳어지면서 처음만큼 독자들에게 충격을 가져다 주기는 힘들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 그리고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작가의 최고 걸작이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탄생되기 보다는 오히려 작가 인생 중반 경에 탄생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일부 작용하는 탓도 있을 것이다.

‘압살롬, 압살롬!’의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막연하게나마 이런 불안감이 느껴진다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요크나파토파’로 대표되는 윌리엄 포크너의 독자적인 세계관 속에 이식 된 미국 남부 사회의 모습, 사라져 보린 미국 남부 사회의 모습이 투영 된 한 가족사의 몰락의 과정들,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 특유의 묘사를 위해 사용 되는 단어와 문장, 내면의 흐름을 펼치는 순간 홍수처럼 터지는 압박은 ‘음향과 분노’,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등의 작품을 통해 이미 경험하였으므로 더 이상 충격적이지도 않을 것이며, 반복되는 테마는 이제는 식상하게 느껴질 법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요크나파토파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고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은 강렬한 느낌을 전할 수 있었다. ‘압살롬, 압살롬!’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 된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이 지닌 매력이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크나파토파라는 가상의 공간과 시간 위에서 펼쳐지는 미국의 남부 사회를 투영한 모습들을 통해 시대의 공기를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충격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파멸로 향할 수 밖에 없는 필연적 인과의 관계를 엮어나가는 재능을 통해 변함없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특히 퀜틴 컴프슨의 등장, 그것도 주역으로 등장하여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모습은 작품을 읽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반가움으로 다가올 수 있었고 숨겨진 강력한 작지만 강한 재미로 다가올 수 있었다.)

제 3의 화자를 통해서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장황한 설명으로 이어지며 독자들을 압박해 가기 시작한다. 시간을 거슬러 하나씩 펼쳐지는 서트펜가의 등장과 모락의 과정은 베일에 감쳐진 진실들이 드러나면서 놀라움과 충격으로 다가오게 되고 하나씩 맞추어지는 이야기의 조각들이 완성되는 마지막까지 작품의 이야기 속에 빠져 들게 만든다.

요크나파토파라는 세계관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윌리엄 포크너의 문장이 만들어내는 깊이는 몇 번을 음미해야 질릴 수 있을까? ‘압살롬, 압살롬!’은 하나의 작품으로 끝나지 않고 이제까지 감상해왔던 요크나파토파의 이야기들과 함께 엮어지면서 보다 확장 된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으며, 아직 감상하지 않은 요크나파토파의 이야기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었다. 작품에 대한 신뢰 작가에 대한 신뢰를 보다 강하게 만들어 주었고 아직도 남아있는 윌리엄 포크너의 매력을 위한 즐거움을 남겨 놓게 되었다.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은 난해하다고 한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여 만들어낸 문장, 독특한 서술방식으로 인한 익숙하지 않음이 만들어낸 것들로 인해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윌리엄 포크너의 작품에 익숙해지면서 전해오는 쾌감은 그 어던 작품과도 비교하기 힘들다. 어려움을 정복한 성취감이 아니라 다른 작가와는 차별 된 독서의 경험을 끊임없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압살롬, 압살롬!’ 역시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