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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데라는 냉전시대를 기나긴 3차 대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향수’는 3차 대전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향을 떠나 오랜 망명 생활 동안 자신의 존재를 지켜왔던 이들이 3차 대전이 끝난 후(소련의 붕괴와 함께 이루어진 냉전 시대의 종결) 다시 한번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이들이 느끼는 ‘향수’는 각각의 존재에 있어서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지 그려나간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서 어떤 형태로 삶의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과거의 기억들은 얼마나 많이 재생 될 수 있고 또 얼마만큼 망각의 형태로 잊혀지게 되는지 보여준다.
‘향수’와 ‘망명’… ‘냉전’이라는 시대적 상황이 만들어낸 체제하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버린 두 단어는 밀란 쿤데라의 손을 거치면서 곳곳에서 충돌하기 시작한다. 정작 작가자신은 정치적 해석을 의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작품을 읽어가는 독자의 입장에서 정치적 충돌, 이데올로기의 영향력, 체제의 필연성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것은 당연할 일인지도 모른다. ‘향수’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쿤데라는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괴로움’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개인적인 ‘욕망’을 참을 수 없는 ‘괴로움’의 한가지 형태로 ‘향수’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 기나긴 망명 생활, 특히 쿤데라 자신의 망명생활을 독자들로 하여금 겹채내게 하였다.
하지만 밀란 쿤데라에게는 ‘향수’마저도 사랑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쿤데라식 사랑이 만들어내는 감각, 그리고 감정들은 ‘향수’라는 의미마저도 사랑의 가치로 이어지고 개인의 존재론적 탐구로 확장된다. 방황하는 율리시스가 아니라 영원한 율리시스로 남길 바라는 쿤데라의 바램이 함께하면서 ‘향수’는 집단의 의식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으로 좁혀지게 되고 쿤데라식 에로티시즘을 통해 즐거움을 준다.
밀란 쿤데라의 작품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은 ‘음악적인 학문을 바탕으로 한 문학’의 의미로 접근하고 있다. 음악이라는 예술이 지니고 있는 특징을 상당 수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꾸준히 음악적인 연출을 서술기법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문장의 재미를 통해 즉흥적이고 감정위주로 독자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박자를 조절해서 독자들을 밀고 당기며 지루하지 않는 플롯 구성과 문단의 장단을 활용하고 있다. 복잡한 화성이 어우러지면 조화를 이루 듯 다양한 키워드를 배치하고 다성적인 소설의 장점을 살리고 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감성적으로 느낄 수 있는 서술을 한다. 이 작품도 예외는 아니다. 처음에 느끼던 정치적 이미지는 조금씩 희석되고 쿤데라의 소설의 기술들이 조금씩 자리를 비집고 들어오게 된다. 결국 ‘향수’ 역시 전형적인 밀란 쿤데라의 소설로 기억되고 만다.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리고 혼란스러울 수도 있는 소설이지면 여전히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밀란 쿤데라의 색깔을 담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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