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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고우영 오백년

sungjin 2007. 9. 25.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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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우영/애니북스

빠르게 흘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도 고우영의 입담은 여전히 빛을 발한다. 고려말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사(史)실과 함께 뒤편에 가리워져 있는 야사들을 담은 고우영의 오백년은 고우영의 작품 세계가 가지고 있는 미덕이 무엇인지 확인시켜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가가 전해주는 재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준다.

특정한 주인공이나 지정된 세계관 속에서 일괄적으로 진행시켜 나가는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교체되는 인물들과 사건들,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는 서사적 구조는 쉴새 없이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을 머리 속에 각인시키기도 전에 다음으로 흘러가 버리기 쉽다. 짧다면 짧은 분량 안에서 역사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기 위해 디테일한 부분은 생략한 채 뼈대만을 가지고 진행시켜도 되나 그러다간 줄거리의 나열에 그치면서 재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작가는 탁월하게 이야기의 배분을 통해 독자들의 흥미를 잡아둘 수 있었다. 역사의 전면에 서서 자연스럽게 서술되는 이야기는 고우영식 비틀기와 현대적 재해석과 끌어오기를 통해서 한층 더 활기를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에피소드를 통해, 일반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만화라는 매체의 장점을 살린 연출을 통해, 무엇보다 작가 특유의 해학과 재치를 통해 펼쳐지는 정사와 야사들은 쉬지 않고 새로운 즐거움을 주고 있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면서도 한템포 쉬어 가는 느긋함을 주기도 하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인물들과 사건들을 빠른 템포로 전개하면서도 놓치기 힘든 재미를 전해주고 있다.

작가 특유의 재치를 담아 역사적 사실이든 작가의 재해석을 통해 새롭게 꾸며진 이야기든 할 것 없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다소 딱딱하고 진지한 내용임에도 딱딱하게 만들어서 접근하기 힘들게 하기 보다는 다시 한번 녹여서 입맛에 맞는 껄쭉함으로 포장하였다. 동시에 역사적 사(史)실에 충실하였고, 시대가 전해주고자 하는 뼈 있는 내용들을 고스란히 살려내고 있다.

고우영의 손을 거치게 되면 역사의 수레바퀴마저도 놀이동산의 관람차처럼 되고 만다. 작가 특유의 익살과 기지 속에서 발휘되는 해학과 재치 넘치는 입담은 언제나 시대의 생생함을 현재의 모습 속에서 멋들어지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점이야말로 고우영의 작품이 가진 미덕이다. 오백년은 이 같은 고우영의 미덕을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