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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토지

sungjin 2007. 9. 25.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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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오세영/마로니에북스

오세영이 리얼리즘 만화가로 평가 받는 이유는 동시대적인 공기를 불어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려내는 작품들은 지극히 사실적이면서도 리얼하게 독자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설령 작품 속에서 묘사되는 시대를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작품 속 세상으로 끌여 들여 눈높이를 함께 하여 같은 공기를 공유하게 만든다.

박재동의 추천사에서 박경리 원작의 토지를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는 오세영뿐이라고 극찬을 했던 이유도 오세영이 작품 속에서 만들어 내는 현실감은 너무나 사실적이면서도 풍부한 감성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격동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민중들의 삶과 애환, 사회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는 토지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주제의 깊이와 무게도 그렇지만 방대한 분량에 이르는 등장 인물들과 그들의 이야기만으로도 벅찬 작품이다. 자칫하면 원작의 줄거리만을 따라가기에 급급한 작품이 될 수도 있고, 원작이 가지고 있는 깊이에 침몰 될 수도 있다. 조금만 지나쳐도 가볍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오세영의 토지를 펼치는 순간 탄성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마디로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 시대의 사회상,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격동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회적으로 흔들리는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리얼하게 묘사되고 있었다. 기록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그려내는 그의 그림들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주제 의식을 통해 지면 위에서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었다. 하늘과 땅, 자연의 풍경 하나하나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한컷 한컷이 아니라 한폭 한폭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오세영은 민족의 정서와 삶을 밀도 있게 담아내고 있다. 그 동안 그가 발표해왔던 단편들을 통해서 작가의 역량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토지에 대해서도 기대하였다고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오세영은 토지의 이야기를 훌륭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오세영의 단편집 부자의 그림일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오세영은 흠잡을 데 없이 탄탄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 한적이 있다. 단순히 그가 이야기꾼이나 그림쟁이의 능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세상은 객관적이면서도 작가 특유의 따스한 시선이 담겨 있으며, 서사적 구성과 흐름을 탁월하게 분배하여 치밀하게 계산 된 연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오세영 자신의 창작품만이 아니라 그가 작가 생활을 해오면서 발표하였던 소설 원작의 단편 만화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입증되었었다. 원작 소설을 존중하며 자신의 색을 절제시켜 누구보다 탁월하게 이미지화시켜 낼 수 있는 작가이기도 한 것이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작품의 깊이와 무게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탄생 시킬 수 있었던 것도 있지만 토지라는 작품이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작품 생활을 해오면서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파트너였기 때문은 아닐까? 토지는 어쩌면 만화가 오세영의 목표점에 가장 가까이 위치하고 있었던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