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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붉은 돼지

sungjin 2007. 9. 25.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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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돼지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소설적인 경향이 가장 강한 작품이다. 동시에 가장 자유로운 작품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미야자키의 애니메이션 중에서 가장 감동 받은 작품이다.

이미 토토로를 통해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작과는 달리 현실의 불완전한 주인공을 등장시키며 비현실적인 요소를 통해 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었다. 병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토토로의 도움으로 고양이 버스를 타고 간다거나,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있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지극히 평범한 소녀에 지나지 않았던 마녀 등 나우시카나 라퓨타 등에서 이상적인 주인공이 펼치는 모험 활극의 재미를 배제하고 일상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정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특유의 재기발랄하고 익살 넘치는 위트와 유머는 한층 더 강화되어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웃음과 즐거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보다 구체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소설적인 모습들이 투영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경향은 붉은 돼지에 이르면서 최고점에 도달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사상과 생각,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되고 연출되고 있다. 전쟁이 끝나고 스스로 마법을 걸어 돼지로 변해버린 공군 파일럿 포르코 롯소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 무정부주의나 파시즘에 대한 반발, 동시에 어린시절부터 비행광이 될 수 밖에 없었던 개인적인 배경을 담고 자유롭게 비행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작품 곳곳에 재치 넘치고 익살기 가득한 위트와 유머를 통해 웃음을 선사하며 작품 전반에 걸쳐 즐거움을 주고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 특유의 인간미 넘치는 웃음은 이 작품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휘하고 있다. 사람들 속에서의 정감 넘치는 따스함과 훈훈함 속에서 전해주는 잔잔한 여운도 잊지 않고 있다.

적어도 이전의 작품들을 통해서 느껴야만 했던 의무감이라든가 사명감이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작품이다. 웬지 모르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감상하면서 은연중에 느껴야만 했던 족쇄(?) 같은 것에 묶여 있지 않았다. 가족용이니, 주제가 어떠니 하면서 스스로에게 암시(?) 같은 것을 건다는 느낌이 아니라 자신이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려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마음껏 펼친다는 느낌이다. 때문에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 역시 즐겁게 웃을 수 있고, 잔잔한 여운의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터뷰를 통해 붉은 돼지에 대해 만들어서는 안될 작품이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가족이 함께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크리에이터로서 무언가 관객들에게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좋은 작품을 제작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만족을 위해 이런 작품을 발표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적어도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전해 줄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