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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루미코는 치밀하게 짜여진 스토리 구조를 통해서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구성력이나 한눈에 반해버리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데셍 실력을 지닌 작가는 아니다. 그녀의 작품에는 액션 장면은 많지만 그렇다고 액션 연출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순간의 재치와 개그 센스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미 우루세이 시절부터 그녀의 패러디 감각과 언어 유희, 그리고 예측불허의 코믹 연출은 타고났음을 증명해 주었으며 이를 통해 그녀는 발표하는 작품마다 모두 성공을 거두며 열광적인 지지층을 만들어 내었고 현재까지도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사랑 받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또 하나 타카하시 루미코는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작가다. 그리고 이 같은 작가의 다양성을 타카하시 루미코를 천재작가로 만들어 주고 말았다.

그녀의 초기시절 단편들을 모은 루믹월드(타카하시 루미코 걸작 단편집)는 이 같은 그녀의 다양성을 통해 천재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시대극에서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공간적인 무대 설정에서부터 학원 코믹과 러브 로맨스, 미스터리와 호러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들며 그녀는 강력한 재미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각종 다양한 설정을 혼재시켜 기발함과 참신함으로 무장시키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한 테마와 주제임에도 신선하게 느껴질 정도로 센스 만점의 아이디어를 보여주고 있다.

불의 여행자와 같이 타임 슬립이라는 설정과 전국시대라는 공간적 무대 위에서 펼치는 로맨스는 물론, 좌충우돌 황당함 속에서 멋진 반전의 묘미를 보여주고 있는 초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 예측 불허의 개그와 만화적 재미의 장점을 살린 중편 ‘더스트 스퍼트’,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작가의 그림체지만 섬뜩할 정도로 공포감을 주고 있는 잊고서 잠들라, 웃는 표적, 학원물을 통한 그녀 특유의 난잡함이 돋보이는 전국학생회 등 다채롭게 구성 된 그녀의 단편들은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아까울 정도로 재미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만화가가 되기 이전부터 생각해오고 구상해왔던 아이디어들이 모두 펼쳐진다는 느낌이다. 단편이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이야기들을, 다양한 모습들을, 그리고 그녀의 재능을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펼치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초기 시절의 작품답게 다듬어 지지 않았고 여기저기서 미숙함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활기가 넘치고 신인다운 열정과 패기가 넘친다. 어쩌면 타카하시 루미코의 진짜 모습은 초기 단편집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