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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하영웅전설

sungjin 2007. 9. 2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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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카 요시키의 작품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큰 매력은 캐릭터가 아닐까? 은영전의 양웬리와 라인하르트, 창룡전의 류도 형제, 그리고 그녀의 하이힐에 밟혀 죽어도 좋을 정도로 매력적인 여왕님께서 등장하는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 사건부 등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저마다 막강한 개성을 가지고 독자들의 머릿 속에 절대로 지워지지 않을 강렬한 흔적을 남길 정도로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꼽자면 입담이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 속에서 등장 인물들에 의해서 신랄하고 냉소적으로 쏟아지는 독설들은 그것이 비록 사회적인 면에 집중되어 있음에도 작가 특유의 거침없는 말투와 의외로 센스 있는 표현은 언제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해 준다. 작품 속의 등장 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정치와 사회 구조 속에서 썩어있고 모순된 부조리들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단순한 재미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은하영웅전설은 이 같은 타나카 요시키의 작품이 가진 매력을 가장 살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숙명의 라이벌로 전 우주에 걸쳐 엄청난 스케일로 벌이는 우주 함대전 속에서 빛나는 전략과 전술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두뇌 싸움을 통해 나타나는 라인하르트와 양웬리 천재성은 둘째치고서라도 너무나 극명한 삶을 걸어오면서 대조적인 성격을 가진 두 캐릭터의 라이벌 구도는 작품 속에서 무수한 접점을 이루면서 한층 더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며 각각의 캐릭터가 독립적으로 존재했을 때 보다 더욱 큰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금발의 귀공자 라인하르트가 우주를 손에 넣기 위해 일관 된 모습을 보여준다면, 수수한 아저씨 같은 타입에 누구보다도 한적한 삶을 살고 싶었던-그러나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지략으로 불패의 마술사가 되어버린 양웬리의 모습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그런 점이 인기를 높이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본편만 10권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만큼 수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 두사람에게 모든 것이 집중 된 것은 아니였다. 당장 기억에 남는 이름만 열거해도 순식간에 지면을 채워버릴 정도로 많은 캐릭터들이 작가의 의해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확실한 메인 캐릭터로 위치하고 있다. 무대 위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해 수많은 조연들이 있고 무대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수많은 스탭들이 있듯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각각의 캐릭터들은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저마다 빛을 발하고 있다.

등장인물이 많은 만큼 입담 역시 가지각색으로 펼쳐지고 있다. 창룡전에서 류도 형제가 내뱉는 독설들이 지나칠 정도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어느 정도 균형을 잡아가는 느낌으로 말이다. 일반적인 비유나 독설은 물론이고 극한 상황에서도 불쑥 내뱉는 여유 넘치는 농담들은 언제나 뻔한 내용이고 예측되는 행동이지만 늘 독자들을 즐겁게 만들고 있다. 때문에 나래이션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서술 형식을 취하고 있음에도 전혀 지루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드넓은 우주를 무대로 펼쳐지는 함대전은 엄청난 스케일만큼이나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압도적인 웅장함은 느껴지지 않지만 전장에서 펼쳐지는 전략과 전술을 통한 지략대결은 무엇보다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권력과 암투, 정치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펼쳐지는 또 다른 이야기는 보는 재미를 더해준다. 250년 동안 계속되는 은하 전쟁 속에서 전혀 다른 체제하에서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진 두 주인공의 깊이 있는 조명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체제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점은 작품에 대한 가치를 높여주지만 수많은 캐릭터들이 자신의 위치를 소홀히 하지 않고 제 역할을 하면서 뼈 있는 말과 함께 터져나오는 대사들을 통해 때로는 신랄하고 통쾌하게 때로는 웃음을 줄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언제나 전장에서 살고 죽는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흥미진진하고 재미있고 통쾌함을 선사해주던 그들의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을 통해 전해주는 감동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여운을 전해준다. 그 과정이 상투적이고 전형적이더라도 독자들의 가슴 깊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잊혀지지 않고 팬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