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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크게 휘두르며

sungjin 2007. 9. 2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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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단체 스포츠입니다. 한 개인의 열정과 노력, 실력만으로는 목표점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에 야구만화에서는 필연적으로 한 개인의 정신적, 기술적 성장만이 아닌 서로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성장하는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등장하게 됩니다.

동시에 만화를 통해 야구를 그릴 때에는 실제 경기에서와 같은 리얼한 플레이 묘사나 경기 진행 보다는 만화만의 과정된 플레이 묘사와 함께 경기 전개 과정에서 많은 드라마를 삽입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지면위에서 실제 경기처럼 완벽하게 재현해 낸다고 하더라도 현실에서 경기하는 것만큼의 흥분과 긴장감, 그리고 감동을 주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스포츠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더욱 확실하게 인식하게 됩니다.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불리는 실제 경기를 통해 느끼는 현장감,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두근거리는 긴장감과 흥분감, 그리고 투혼을 발휘하면서 팬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선수들의 플레이는 지면위에서 그려내는 것만으로는 확실히 부족한 맛이 있습니다.

히구치 아사가 강담사의 애프터눈에서 연재 중인 '크게 휘두르며'는 만화만의 장점을 통해서 실제 경기를 관람하는 것보다 부족한 긴장감이나 박진감을 메우기 위한 필살기도 없고 과장된 원근법이나 임팩트 강한 플레이 묘사는 없습니다. 대신 전술이나 선수들에 대한 데이터를 통한 볼배합이나 심리전 같은 요소를 통해 비교적 현실에 맞추어서 리얼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오히려 필살기나 난무하는 다른 야구만화와는 다른 매력이 가득합니다. 보다 재미있는 요소들를 담아내면서, 그리고 캐릭터 하나하나에도 많은 드라마를 담아내고, 또 다른 입장에서 야구를 바라보면서 굉장히 매력적인 야구만화로 탄생시켰습니다.

강타자는 3할대를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포수는 2할 6푼만 기록해도(공격형 포수가 아닌 이상은) 준수한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포수가 해야하는 역할은 다른곳에 있으니까 말입니다. 같은 공격력을 가진 타자라면 외야수보다는 내야수가, 그리고 내야수보다는 포수가 높은 연봉을 받게 되는 이유도 포수는 그라운드를 책임지고 있는 안방마님이자 또 하나의 감독으로 경기를 조율해 나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바로 포수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말해주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에이스 또는 4번 타자라는 고교야구의 큰 그림자를 걷어내면서 또 다른 위치에서 야구라는 경기를 즐길 수 있게 하는 야구만화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고교야구에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되는 존재는 분명 투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프로야구와는 달리 몇경기고 완투해 낼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투수놀음이나 다름없습니다. 실제로 초고교급 괴물 투수 단 두명만을 가지고 고교야구를 재패하는 경우는 종종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야구는 9명이서 하는 스포츠라고 이야기하지만 확실한 점수를 따낼 수 있는 4번 타자와 확실한 에이스가 있다면 고교야구에서 이둘의 존재는 전력의 50%이상까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의 야구만화에서 4번타자와 에이스의 그림자는 다른 캐릭터들을 축소시켜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작품은 다른 야구만화였다면 에이스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는 다른 선수들도 균형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미하시'라는 투수 때문입니다. 보는 이들을 답답하게 만들 정도로 소심한데다가 심리적인 결핍상태에 있으며, 초고교급은 커녕 110km의 구속을 가지고 있는(이후 구속이 빨라지긴 하지만 그래도 야구만화의 주인공이라면 150km정도는 던져줘야죠. 물론 150km를 던진다고 해도 메이저리그에서는 열나게 얻어맞고 있는 선수들도 있습니다만...) 제구력과 변화구로 먹고사는 투수입니다. 적어도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구질은 가지고 있지 않죠. 때문에 정확한 재구력과 다양한 구질을 통해서 타자를 맞춰 잡을 수 밖에 없는 투수라는 것입니다. 소심한 성격 탓에 믿고 리드해 줄 수 있는 포수의 역할은 절대적이며 맞춰 잡는 과정에서 필요한 야수들의 도움 역시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입니다. 한결같은 정면 승부보다는 상황에 맞는 임기응변적인 대응도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시시각각 상대 타자에 맞춘 절묘한 볼배합은 물론 벤치에서의 전략과 감독의 역할도 중요하게 작용하게 됩니다.

다른 야구만화와는 다른 입장에서 보다 폭넓게 감상할 수 있는 야구만화입니다. 또한 새롭게 탄생된 1학년들만으로 구성 된 신생팀이라는 설정에다가 서로간의 신뢰를 통해서 정신적으로 기술적으로 성장해간다는 스포츠 만화 특유의 전형적인 요소가 더해지면서 이제까지 보아오던 야구만화와는 확실히 차별적이면서도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탄생시켰습니다.

무엇보다 볼 하나하나에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생생함이 넘칩니다. 생동감이 넘치는 이 작품은 각 선수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됩니다. 순간의 긴장감과 시원함, 통쾌한 순간들이 짜릿하게 연출됩니다. 공 하나를 두고 각각의 선수들이 펼쳐는 드라마는 서로간의 신뢰와 유대를 바탕으로 만화라는 지면 위에서 펼칠 수 있는 매력들이 마음껏 발산되고 있습니다.

스포츠와 함께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스포츠만화 특유의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접해왔던 야구만화와는 또 다른 위치에서 전개되는 재미를 가득담고 있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