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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메이저

sungjin 2007. 9. 24.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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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년 KBL 챔피언 결정전에서 기아의 허재 선수는 진통제를 맞아가면서 눈부신 투혼을 발휘하며 생애 최고의 활약을 펼쳤으나 결국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투혼은 모든 이들을 감동시켰으며 우승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챔피언 결정전 MVP를 수상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준우승 팀에서 파이널 MVP가 선정된 것은 국내 프로농구 사상 허재 선수가 유일하며 미 프로농구 NBA에서도 단 한 차례 밖에 없는 이례적인 일이다.)

2004년 메이저리그 월드 시리즈에서는 디비젼 챔피언쉽에 이어서 다시 한번 커트 실링 선수가 자신의 발목을 피로 물들이는 투혼의 피칭을 하면서 86년만에 보스턴에게 우승컵을 선사하는데 힘을 실어주었다.

2001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의 앨런 아이버슨이 11군데에 부상을 입고서도 NBA파이널에 오르기까지 보여준 그의 열정은 전 세계 농구팬들을 열광시켰다.

분명 이 선수들은 앞으로의 선수 생활이 남아 있고 미래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플레이를 할 필요가 없다. 무모한 행동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어리석다고 비웃는 사람들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선수들이 모습에 더욱 감동 받게 되고 박수를 보낸다.

미츠다 타쿠야의 야구만화 메이저를 보면서 이런 선수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인공 고로가 경기마다 발휘하고 있는 투혼은 비록 만화이긴 하지만 스포츠 선수들이 보여주었던 투혼 이상의 열정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을 감동시키고 있다.  

무모함을 넘어서 바보같이 생각되는 고로의 투혼은 보는 이들을 언제나 안타깝게 만들고 있다. "목숨을 건 남자의 승부에 리셋은 없다."라고 멋있게 이야기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고 하지만 결국 내몸이 박살나도 좋으니까 지금 경기에서 이기고 싶다는 것이다. 바보다. 정말 바보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겨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망가져가는 몸과 시한 폭탄처럼 되어가는 선수생명을 담보로 얻은 것은 승리에 대한 만족감, 그리고 그 이상의 값진 무언가라고 하지만 앞으로 미래가 많이 남은 그가 지금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리면서까지 얻은 영광은 결국 지난날 청춘의 불꽃같은 추억에 불과하게 될지도 모른다.(적어도 보는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의 행동을 보고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까지 그와 함께 하며 그의 열정에 박수를 보내면서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그의 눈에 비치는 그의 투혼과 열정에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들까지 전염되어 버리고 만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던진 공 하나하나에 후회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정말로 후회가 없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하지 않고 미래를 기약하며 남기게 될 후회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승부를 통해서 얻게 되는 소중한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게 정말로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프로야구에 진출해서 부와 명성을 얻으면서 좋아하는 야구를 계속하게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만일 그럴 거라면 자신 앞에 높여진 탄탄대로를 아무런 망설임 없이 편안하게 걸어가면 될 것이다. 메이저에 진출해서 자신의 아버지의 사망을 불러오게 하였던 깁슨이 은퇴하기 전에 꿈의 무대에서 그와 멋진 한판 승부를 펼치는 것? 그것도 아닐 것이다. 물론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서 강자들과 멋진 승부를 펼치고 싶은 것은 고로가 원하는 것이며 때문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또 다시 험난한 야구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정말로 고로에게 소중한 것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고로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야구 그 자체가 아닐까? 대답이 너무나 추상적이고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현재 가장 멋진 승부를 펼칠 수 있다면 그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리틀 야구 시절에는 요코하마 리틀팀과의 경기가,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해당 고교와 승부를 펼치는 것이 고로가 현재 가장 재미있는 야구를 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연장경기가 많고, 9회까지 2점차 이내로 승부가 결정되는 경기를 많이 하는 팀은 분명히 매경기마다 순에 땀을 지게 하면서 관중들을 열광시키겠지만 결국 선수들은 피를 말리는 경기의 연속으로 엄청난 피로를 동반하며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는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 반면 언제나 압도적인 전력으로 쉽게 쉽게 경기를 해나가는 팀은 관중들에게 긴장과 박진감을 선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우승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분명 후자의 경우가 이상적인 전개이며 전자의 경우는 선수들을 혹사시킬 뿐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경기는 분명히 전자쪽에서 많이 나오게 된다. 마지막까지 승패를 알 수 없는 박빙의 승부처에서 터지는 삼진이나 홈런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쾌감을 선사한다. 아마도 고로는 이런 승부를 계속해서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로의 야구인생은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하다. 만일 쉽고 편한 길이 있다고 하더라고 분명히 그는 험난하고 힘든 길을 택해서 걸어갈 것이다. 그는 머릿속에 야구밖에 없는 야구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야구바보이기 때문에 가장 재미있는 야구 인생을 살고 싶어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