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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삼체

sungjin 2024. 7. 20. 15:54

류츠신의 삼체를 읽으면서 페이지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과학적 상상력이 펼쳐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는 가능할 것만 같은 과학의 아득한 저편으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현실과 만나면서 부서지는 환상이 아닌 현실을 바탕으로 튼튼하게 지탱할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미지와의 조우 속에서 부딪힐 수 밖에 없는 두려움과 호기심이 다양한 형태로 완성되어 독특한 즐거움을 전해주었고 SF라는 장르가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재미의 힘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하였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파운데이션 3부작을 통해 과학적 상상력과 설정이 완성해낸 압도적인 스케일의 세계관을 통해 독자들을 압도시켰던 것처럼 류츠신은 삼체문명과의 만남을 통해 치열한 과학적 사고의 장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거대한 스케일로 확장시켜 독자들을 압도해 간다. 개인과 개인, 자신과 자신과의 갈등은 물론이고 또 다른 고등 생명체 같은 조우 속에서 무한이 울려퍼져나가는 인류의 서사시를 완성하였다. 때로는 SF가 아닌 전혀 다른 성격의 장르 소설에서 볼수 있는 매력들을 작품 속에 삽입하면서 역사 소설, 무협소설,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일부 취하면서 자칫 무거워지기 쉬운 작품의 무게를 덜고 작품 속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들 수 있는 재미를 주었다. 역사적 인물들로 치환시켜 묘사된 삼체 문명에 대한 이야기, 고차원 세계 속에서 흘러가는 또 하나의 역사와 초월적 존재들에 대한 압도적인 무기력감을 선사할 수 밖에 없는 코즈믹 호러 특유의 분위기는 작품을 복잡하고 무겁게 만들지만, 아주 사소한 갈등과 다툼 속에서 벌어지는 흥미진진함은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무엇보다 사랑의 기적을 바탕으로 완성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작품을 읽으면서 또 하나의 감동을 받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도 서술되어 있는 인류의 어리석음은 여전히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음이지만 여전히 울려퍼질 수 밖에 없는 인류의 노래이기도 하다. 압도적인 절망감을 안겨주는 공포의 대마왕마저도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무한한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동경심이 작품 속 곳곳에서 울려퍼진다.

멸망의 이야기가 아닌

소설 삼체는 인류보다 압도적 우위에 있는 삼체 문명과의 조우를 통해 패배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야기지만 동시에 희망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보다 고차원적인 존재에 의해 멸망으로 향해갈 수 밖에 없는 무기력한 인류의 마지막을 그리고 있지만 아주 작은 우주의 어딘가에서 소박한 희망의 모습을 담았다. 패배감과 절망감으로 채워진 작품이 아닌 여전히 이어지는 형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