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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 108권을 읽으면서…

sungjin 2024. 6. 22. 11:01

언제부터인가 원피스라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긍정적인 말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굳이 여기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을 정도로 연재가 장기화 되면서 초반에 구축되었던 세계관이 버티기 힘들 정도로 흔들리는 모습은 작품을 읽으면서 누구나 아쉬움에 한마디씩 남길 수 밖에 없겠죠.

저역시 원피스라는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각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용돈을 모아 한권씩 구매하면서 어느 새 책장이 가득 채워지는 즐거움이 있었고, 매주 챔프를 읽으면서 두근거리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원피스라는 작품 자체의 즐거움도 대단했지만 그 시절의 추억이 함께하였기 때문에 즐거움이 배가 될 수 밖에 없는 작품이였죠.

언제부터 원피스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사라져 버린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신간이 나와도 관성처럼 학생때부터 꾸준히 구매했으니 그냥 구매하는 느낌이였죠. 누군가는 세월의 흐름 속에 학창시절의 환타지를 잃어버리고 현실의 리얼리즘 속에서 그 시절의 감성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곰곰히 생각해보면 바뀐 건 내가 아니라 원피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원피스라는 작품을 독자들의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의 자세는 대단하지만 작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결과적으로 작품을 어렵게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108권을 잃으면서 이 같은 생각은 다시 한번 뒤집어 지게 됩니다. 바뀐 건 원피스가 아니라 나였구나!라고 말입니다. 과학의 발전과 함께 세상에 대한 물리적 한계가 명확해지면서 사라져버린 보물섬은 여전히 원피스의 무한한 세상 속에 가득 채워져 있었고(몇번이나 이야기하지만 보물섬의 의미는 부와 명성이 아니라 꿈과 모험으로 치환됩니다.), 유쾌한 모험은 변함없는 루피의 웃음과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예전 같은 관심이 없음에도 가끔씩 원피스라는 작품에 반해버리는 이유도 작품에 대한 애정이 식을만 하면 다시 한번 무한한 감동으로 몰아넣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08권은 쿠마의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쿠마의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가슴 아픈 사연과 함께 무한한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뻔해!”, “또야!”라는 말을 하면서도 원피스라는 작품 속에 푹 빠져들게 됩니다. “이래서 원피스를 좋아하구나!”라고 그 시절의 즐거움을 떠올리게 합니다. 작품에 대한 특별한 감정 또는 애정과 함께 언제나 바래지 않는 추억의 보물상자이자 여전히 현재도 반짝임이 가득한 보물상자 같은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원피스가 훌륭한 작품인 이유는 두근거림이 가득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작품의 완성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잣대를 들이밀면서 수치화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보고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재미의 두근거림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원피스라는 작품의 훌륭함을 설명하기 보다는 원피스라는 작품의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죠.

이제 진짜 마지막 항해를 향해가는 느낌입니다. 세계의 진실에 또 다시 한발짝 다가설 수 있게 되었고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퍼즐의 파편들이 한곳으로 모이고 있습니다. 루피의 항해는 아득하게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조금씩 결말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이 감정들이 희석되고 원피스라는 작품에 대한 관심이 식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때쯤이면 또 다시 여전히 변함없는 즐거움으로 원피스의 이야기를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