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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2년 8개월 28일 밤

sungjin 2021. 1. 22. 09:56

천일야화, 노아의 방주 그리고 살만 루슈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살만 루슈디판 천일야화같은 이 작품은 한밤의 아이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환상은 현실 속에 배치되고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이슬람의 철학자 이븐루시드를 사랑했던 마족의 여왕 두니아의 후손들을 통해 천년-천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전개되는 이 작품은 특유의 환상과 현실의 존재, 세계가 혼재되어 매혹적일 수 밖에 없는 살만 루슈디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게 만든다.

공중을 떠다니고, 자신의 이미지를 실체화시킨다. 한날 한시에 태어나면서 신비로움 힘을 지닌 살만 루슈디의 대표작 한밤의 아이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2 8개월 28일의 밤에 등장하는 이능의 힘을 지닌 자들은 이븐루시드와 두니아의 후손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작품 속에서 기이하고 신비로운 환상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천년전 이슬람제국의 시대에서 시작된 철학자와 마녀의 사랑,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태어난 이능의 힘을 지닌 후손들, 대폭풍우와 함께 현대 세계에서 벌어지는 괴사의 시대, 마왕와 마녀가 등장하고 마족간에 치열하게 펼쳐지는 마계대전, 천년 뒤 신체의 변화마저도 컨트롤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화 된 미래 사회, 2 8개월 28일의 밤은 작가 특유의 SF와 환타지가 현실을 바탕으로 펼쳐진다.

이 같은 환상은 어느 새 현실 속으로 녹아 들어가고 지독할 정도로 현실적인 작가의 생각들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설정은 흔하디 흔한 환타지의 세계지만 이야기 안에 담겨 있는 생각들은 무겁기만 하다. 두려움의 존재가 신들을 향한 경외심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증명하고 싶어했지만 이성의 존재가 이를 극복하고 합리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결말로 마무리 하기 위해 거대한 이야기를 그려나가며 수많은 정보들을 삽입하였다. 현대 사회의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탄생한 수많은 정보의 파편들이 곳곳에 삽입되어 자칫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기 보다는 정보의 파편들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을 정도로 복잡하고 다양한, 그리고 풍부한 현대사회의 정보들은 작품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주며 독자들을 사로잡는다.(반면 역자는 작가의 또 다른 정보의 집합체인 분노를 번역할 때처럼 인터넷의 힘이 없다면 번역이 불가능했을 정도로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는 누구나 예상한 방향으로 마무리 된다. 인간을 사랑한 마족의 여왕이 보여준 자기희생의 모습은 흔하디 흔한 환타지의 정석적인 플릇이지만 작품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는 작가의 생각들이 겹치면서 무게감을 지니고 독자들에게 묵직한 이야기로 다가오게 된다. 앞서 언급한 합리적 이성의 승리를 전달하기 위해 인간을 사랑했던 두니아의 이야기는 환상소설로 그치지 않고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소설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까지 기지를 발휘하며 웃음을 선사하는 것도 있지 않았다. 치열한 마족의 수장들의 싸움에서 결국 마지막 결정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이어지면서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즐겁게 해준다. 정보의 홍수에서 파생되는 파편들의 즐거움과 함께 재치 넘치는 결말을 통해 소설 그 자체의 이야기의 즐거움도 함께 선사하며 이야기꾼 살만 루슈디의 작품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2 8개월 28일이 밤은 익히 우리가 느껴왔던 살만 루슈디의 작품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다소 아쉬울 수도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악마의 시에서 보여주었던 탁월한 센스나 분노에서 들려주었던 정보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을 압박하던 즐거움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분명 만족스러운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물고 특유의 재치와 센스와 무장한 정보의 파편들이 평생에 걸쳐 느낀 현대사회의 생생함이 여전히 살아 있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