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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영웅 英雄 , Hero , 2002

sungjin 2019. 6. 16. 18:28

 

흰색, 푸른색, 붉은색, 녹색, 검은색…
사랑이라는 감정, 희생이라는 아픔, 시기에 물들어 있는 질투, 회상, 그리고 힘이라는 시대의 상징…

장이모 감독의 ‘영웅’은 영상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미장센의 잠재적 가치를 극한까지 펼쳐내었다. 가지각색의 색채가 자아내는 이미지를 화면 가득 물들이고 한치의 예외도 없이 명확하게 설정하였다. 검은색으로 출발하는 화려한 액션은 맹인악사의 현이 만들어 내는 울음소리와 함께 강렬한 이미지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강타하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 이내 곧 색채로 물든 이미지 속에 액션의 영상미학마저도 빨려들어가 버리고 만다. 고요한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푸른색의 고요함이 만들어 내는 산수화 같은 풍경은 마치 영상의 미학을 전달하기 보다는 한폭 한폭의 그림 같은 정적인 순간의 영원성을 이미지화시켜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든다. 감상하는 내내 탄성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영웅에서 보여주는 화면의 미장센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색채의 아름다움, 무협 특유의 액션의 춤사위가 보여주는 아름다움과 선율이 흘러가면서 자아내는 악곡의 아름다움이 극대화 되어 화면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한 순간 숨이 멎을 정도로 고요하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칼위에 튕기는 순간, 검끝이 호수를 가르며 호수 위의 잔잔함이 흐트러지는 순간, 휘몰아치는 화살의 폭풍 속에서도 굳건하게 서있는 의지, 황금색 파도처럼 소용돌이 치는 낙엽들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순간 등 각각의 에피소드마다 펼쳐지는 화면들은 한장 한장 떼어내어 감상하고 싶을 정도다. 오직 이순간 화면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위해 영화가 존재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난 이후 가장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은 이야기나 액션이 이나리 가장 먼저 영상미가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다. 한폭의 그림같은 장면들을 엮어서 영화로 만들었을 때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구현화되었다고 이야기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음악이 더해지고 연기자들의 액션이 극한으로 펼쳐진다. 끝없이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색채로 물들어진 화면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자연의 신비로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동양화가 지닌 여백의 미학 같은 영상들이 화면 속에서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스며들어온다. 어떤 수식어를 사용해야 이 영상미를 전달할 수 있을까? 어떤 감탄사를 사용해야 이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만든다.

진시왕과 이름없는 암살자의 대화를 통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각각의 에피소드 사이에 독자들은 순간 다음 이야기가 펼쳐질 땐 얼마나 아름다운 색채를 이미지화시켜 영상의 미학을 보여줄까? 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예상을 뛰어넘어 감탄사를 자아내게 만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