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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창백한 불꽃

sungjin 2019. 3. 10. 15:51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을 읽으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소설의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작가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기묘할 정도로 나보코프의 장난질에 넘어가게 되고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산문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은 주석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주석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산문시의 저자와 주석의 저자를 통해 독자들은 두사람의 관계성을 주목하면서 주석을 하나하나 읽어나간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주석을 통해서 펼쳐지기 시작한다. 젬블라라는 어느 왕국의 국왕이 도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와 국왕을 시해하기 위해 또 다른 여정을 떠나는 그라두스의 이야기가 작품 속에서 동시대적으로 일치되고 겹쳐지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킨보트는 왜 셰이드에게 젬블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젬블라의 국왕의 이야기는 작품 속에서 어떠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라두스의 결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소설은 기본적으로 퍼즐의 조각을 비워놓고 마지막까지 독자들에게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미완성으로 구성된 999행의 시와 이 시를 하나하나 풀어나가기 위해 완성된 주석이라는 형태를 구성하면서도 둘 사이의 관계를 역전시켜 독자들은 혼란스럽게 만들기 시작한다. 주석을 통해 작품의 본모습을 파악하게 되고 주석을 구성하는 세 개의 축(시의 저자인 셰이드와 주석의 저자인 킨보트의 이야기, 젬블라의 이야기, 그라두스의 이야기)을 따라가면서 마지막에 이르면서 생각하지 못했던 진실을 마주하고 결말을 완성하면서 독자들은 나보코프가 구성한 장치에 정확하게 톱니바퀴를 끼워 넣게 된다. 작품의 형식이나 구성에 있어서 독특함이 있기에 작품이 매력적인 것 이상으로 흩어진 퍼즐들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즐길 수 있는 재미가 넘치는 작품이 될 수 있었다.

 

나보코프의 소설 '창백한 불꽃'은 환상적이다. 어딘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환타지가 아니라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이 경험하는 세상 속에서 전혀 다른 감각을 통해 경험하지 못한 문학적 즐거움을 완성한다. 지적인 언어유희는 물론이고 작품을 구성함에 있어서 나보코프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작품세계들이 언제나 독자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나보코프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난해함에 혼란스라워하더라도 작가의 유희에 웬지 모르게 넘어가고 싶고 곳곳에 산재해 있는 물음표들이 마지막까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나보코프의 언어와 문장의 마법을 칭찬한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그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소설의 영역은 매력적이다. 이 정도로 무한한 미지의 영역으로 작품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경이로움을 선사해 줄 수 있는 작품을 얼마나 만날 수 있을까? '창백한 불꽃'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단순히 이야기의 재미만이 아니라 시와 주석의 연결고리를 통해 소설이라는 형식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새롭게 알게되는 즐거움이 함께한다. 마지막까지 아이러니한 상황을 즐기면서 독자들에게 작품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만든다.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게 만들고 놓치고 있었던 수수께끼를 하나하나 찾아보게 만든다. 몇 번이고 꼽씹어 보면서 여전히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창백한 불꽃은 꽤나 오랜 시간 동안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작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