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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이 세상의 한구석에

sungjin 2019. 3. 7. 18:48


작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코노 후미요 원작의 ‘이 세상의 한구석에’라는 작품을 마주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손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딘가 마음 한구석을 울릴 수 밖에 없는 표지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스한 이미지로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을 묵직하게 차지하는 무거움이 함께 느껴진다. 페이지 곳곳에서 펼쳐지는 붓터치와 펜터치는 작가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신선하게 다가오면서도 그 시절의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를 매끄럽고 깔끔하게 표현한다. 그리움 속으로 안내하는 듯한 분위기가 웬지 지금 이순간을 함께 하는 듯한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부분, 미쳐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는 장면들 등 아주 작은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묘사된 배경을 감상하면서 작가의 치밀함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보는 것만으로 지루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시대의 공기를 가득 담았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에게 생동감 넘치는 노스탤지어를 느낄 수 있게 하였다.

 

한적한 마을의 여유로움이 기묘할 정도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따스한 이야기지만 깊은 상처와 슬픔이 배경에 깔리게 된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잔잔하게 때로는 격하게 감정을 흔들면서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이후에도 긴 여운 속에 잠시나마 젖어 들게 한다. 담백하다고 이야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폭풍이 휘몰아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아름답게 미화된 추억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오는 삶의 조각들이 감정의 파편으로 하나씩 하나씩 박히기 시작한다.

 

묵직한 이야기의 힘만큼이나 탁월하게 연출된 장면들을 하나씩 하나씩 집중하면서 작품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요동치기 시작하고 조금씩 조금씩 모르는 사이에 가슴 속 깊이 스며들게 만든다. 작품을 읽은 이라면 누구나 공통분모를 가질 정도로 ‘이 세상의 한구석에’라는 작품이 전해주는 묵직하고 잔잔한 여운으로 가득한 호수는 독자들의 가슴 깊은 곳에서 만들어 질 테니까 말이다.



PS 애니메이션으로 완성된 이 세상의 한구석에를 다시 한번 감상하면서 느낀 감정은 여전히 변함없는 느낌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을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더욱 더 만족스러울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카타부치 스나오 감독을 비롯하여 이 작품을 제작한 사람들을 코우노 후미요의 원작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충분히 이루어진 후에 작품을 완성했다는 느낌입니다.

 

작지만 호소력 짙은 강한 목소리가 영상을 통해 전달되기 시작합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다시 한번 이 세상의 한구석에라는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원작만화를 이미 감상한 사람들도, 원작을 모르고 이 작품을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같은 감정을 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소박한 삶의 모습과 감정의 파편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묵직함은 좀처럼 만나기 쉽기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