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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제0호 by 움베르토 에코

sungjin 2018. 10. 28. 17:04


우리는 거짓말 속에 살고 있어.

거짓말을 하지 않는 대신 무언가를 알리지 않기 위해 침묵할 테니까.”

효과적인 암시란 그런 것입니다. 그 자체로는 별로 가치가 없는 사실, 그렇디만 진실이기 때문에 반박되지 않는 사실을 넌지시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거짓말을 잘하는 에코 선생님은 이번에도 어김없이 엉터리를 들고 오셨다. 작정하고 엉터리 저널을 완성하기 위해서 만물박사 움베르토 에코는 시작부터 셜록홈즈를 들고오시더니 마무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끝맺음하였다.(역시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최고의 초월번역으로 완성된 명대사라니까)

 

시간을 조금만 거슬러 무솔리니 시대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무솔리니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는 가정을 합시다. 교황과 아르헨티로 운반 된 보물의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맞추어 흩어진 퍼즐의 조각들을 모아봅시다. 어때요? 원가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완성되지 않았습니까?

 

로아나 여왕에서 보여주었던 이탈리아의 삽화들이 삽입되기 시작하고 푸코의 진자에서 보여주었던 음모마저도 창조해내는 에코의 거짓말이 제0호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기 시작한다. 소설의 재미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에코 선생님은 시작부터 탐정 소설의 오프닝을 구성하고 살인 사건을 통해 궁금증을 폭발시킨다. 결말은 언제나 헛웃음이 나올정도로 독자들의 뒤통수를 치지만 누구도 허탈해하지 않고 에코 선생님이 들려준 이야기에 웃으면서 화를 내게 된다.

 

여전히 정보들이 쏟아진다. 저널을 소재로 한 이야기답데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수없이 곁가지를 뻗어나가면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산재하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줄거리를 구성하는 핵심 줄기는 길지 않지만 에코가 만들어내는 수많은 정보의 곁가지들이 작품을 복잡하게 만들고 과잉정보상태로 만들어 혼란을 주기 시작한다. 다행이 이번 소설은 분량이 길지 않아서 일찍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시대적 배경이 현대이다보니 그나마 이해하기 쉬운 문장이 많았다. 상대작으로 정보의 양이 적고 접근성 높은 정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조금은 쉽다고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읽어나가면서 벅찰 수 밖에 없었다. 에코 선생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은 생각보다 넓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읽기를 중단하고 무언가를 검색하게 된다. 주석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그리고 여전히 알지 못하는 이탈리아의 역사를 뒤적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싸움 아닌 싸움을 하면서 책장을 덮는 순간의 즐거움 만큼은 여전하다. 에코 선생님은 세상에서 여전히 재미있는 거짓말을 들려주고 계셨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