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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미생

sungjin 2014. 3. 20. 08:18



윤태호 최고 걸작은 ‘야후(YAHOO)’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내게 있어서 만큼은 절대적으로 ‘야후(YAHOO)’다. 그만큼 충격적이였고 강렬하였으며 만화가 윤태호의 이름을 머릿속에 단숨에 새겨버릴 정도로 인상 깊었다. 과장해서 당시 학산문화사에서 ‘부킹’을 창간하면서 얻은 최대의 소득이 있다면 바로 ‘야후(YAHOO)’가 연재된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을 정도로 ‘야후’는 윤태호 최고의 걸작이다. 아니 어쩌면 만화가 윤태호에게 있어 큰 전환점이 된 작품도 야후일지도 모른다. 야후 이전에 발표한 작품들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개그만화였고 야후 이후 발표한 작품들은 막말로 망했다. “이끼”를 통해 웹툰으로 다시 한번 부활하기 전까지 윤태호의 대표작이자 최고 걸작은 ‘야후’였다.(야후가 왜 윤태호 최고의 작품인지는 여기서 생략한다. 읽어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윤태호의 필모그래피에서, 그리고 현재의 웹툰이 걸어온 발자취를 고려할 때 어쩌면 ‘미생’이라고 이야기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야후’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미생’이 지닌 가치는 만화계에 있어서도, 작가에게 있어서도, 그리고 독자에게 있어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생은 웹이라는 공간에서 출판만화의 형식을 절묘하게 풀어나갔다. 출판만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 작가답게 책이라는 형태에 있어서도 만화의 장점을 어떻게 펼쳐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고, 웹이라는 형태에서도 만화의 장점을 어떻게 펼쳐낼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지면의 제약이 없어 무한한 웹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웹툰을 연재하면서도 지면의 제약 공간의 제약이 있는 단행본의 특성을 고려하고 있었다. 때문에 컷의 배분이나 프레임의 구성 등 만화라는 인쇄매체의 특징이 살아있는 웹툰이 될 수 있었다. 윤태호의 웹툰을 보면서 출판만화를 보던 이들에게도 전혀 위화감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역으로 기존의 웹툰에 익숙한 이들에게 윤태호의 만화는 스크롤이라는 시선의 흐름을 살린 인쇄된 만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으며 웹 연재 이후 인쇄매체로 이식하면서도 이질감 없이 출판만화로 컨버젼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강도하와 함께 윤태호는 웹과 종이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몇 안되는 만화가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말이다. 제한 된 지면 위에서 밀도있는 구성과 짜임새로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주던 작가들도 웹이라는 공간에서 다소 아쉬움을 보여준 경우도 있었고, 웹에서도 계속 출판만화의 연출을 고집하다 외면 받는 경우도 있었다.(물론 웹에서도 출판만화의 프레임을 유지하면서 성공한 작품은 많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웹이라는 특징을 살린 웹툰이라기 보다는 웹에 연재한 출판만화의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웹툰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 않을까?) 반대로 웹에서는 상당히 반응이 좋았으나 출판만화로 이식되면서 제한된 종위 위의 컷과 프레임의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윤태호는 웹툰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고, 출판만화에서 오랜동안 쌓인 내공을 웹에서 새롭게 펼쳐내면서 웹툰의 잠재적 가치를 높였다.

 

특히 미생은 웹툰과 종이에 인쇄된 출판만화 양쪽 모두에서 만화의 순수한 가치는 물론이고, 상업적인 가능성을 증명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주목을 집중시켰다. 이전에도 출판만화의 연출을 웹툰에서 훌륭하게 이식한 작품이 있었고, 웹툰에서 출판만화로 훌륭하게 이식한 작품은 있었다. 하지만 미생은 출판만화와 웹툰 양쪽에서 보다 폭넓은 호응을 끌어내었고 양쪽 모두에서 각각의 특징과 공통점을 살린 연출을 보여주었다. 어디까지나 만화의 기본은 스토리, 즉 이야기의 힘을 기본으로 독자들의 공감을 끌어낸다는 공식에 충실하면서도 그림으로 전해주는 만화의 장점을 활용한 작품을 말이다. 출판만화에 익숙한 이들에게 웹툰에서도 이정도로 밀도 있는 구성과 짜임새로 완성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만화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미생은 출판만화로 발매되어 많이 팔린 만화가 아니라 웹툰이 출판만화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움을 보여준 작품이다. 단순히 출판만화로 많이 팔린 작품들이 웹툰의 특징을 일방적으로 강요했다면 미생은 웹툰과 출판만화를 아우르며 "만화"라는 매체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훗날 미생은 웹툰계에 있어 또 다른 웹툰의 이정표로 평가받지 않을까? 강풀이 '순정만화'를 다음에 연재하면서 스토리 중심의 웹툰의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였고 강도하가 '위대한 캐츠비'로 웹과 출판만화의 특징을 살린 연출의 정석을 보여주었듯 윤태호의 '미생'은 본격적으로 만화라는 이름 아래에서 웹과 종이의 구분을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데 일조한 작품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