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픽션들과 알레프를 통해서 보르헤스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되었던 탓일까?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읽으면서 웬지 아쉬움이 남는다면 픽션들과 알레프를 통해서 이미 ‘보르헤스의 단편이 선사하는 경이로움’을 이미 경험해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픽션들과 알레프의 경이로움이 어느 정도 희석되고 시간이 흐른 후 다시 한번 이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점은 이 작품이야말로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를 입문하기 위한 안내자라는 것이다. 이후 보르헤스의 작품이 지니게 될 대략적인 윤곽과 단편만을 고집하는 보르헤스의 이야기 구성과 서술 형식,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서 드러나는 보편적 공통분모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픽션들이나 알레프에서 보여주었던 특유의 현학적인 무장으로 똘똘 뭉친(철저하게 압축되어 있는) 난해함의 난이도가 다소 줄어들면서 보르헤스식 단편이 주는 경이로움은 덜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보다 접근하기 쉬운 작품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문, 사회, 철학과 미술 등 현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는 보르헤스의 숨막힐 듯한 지식의 보물창고는 잠시 묻어두고 ‘불한당들’의 이야기들을, 이른바 ‘갱스터 스토리’들을 통해서 보다 가벼운(어디까지나 보르헤스의 작품을 기준으로 상대적인 기준에서 평가하자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보르헤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로써의 역할을 충분히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돌아보자! 아메리카 대륙을 건너 중국과 일본, 그리고 중동으로… 단편이라는 분량의 장점을 활용하여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다양한 불한당들의 이야기는 각각의 이야기들이 한 권의 단행본으로 묶여지면서 보편적인 교집합 같은 이야기 대신 글로벌적인 합집합 같은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연대기 중심의 불한당들의 이야기는 짧은 지면 위에서 과감하게 생략되고 압축되면서 편집본 또는 요약본의 이미지를 주었고 동시에 보르헤스 특유의 문헌의 색깔을 띈 단편 소설의 매력이 빛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보르헤스의 작품은 다 이런 것일까? 왜 이렇게 단편적 상황들 위주로 편집된 느낌이지? 주석은 또 왜 이런 식으로 작가의 유희가 개입되어 있는 것일까? 외적 정보는 왜 그렇게도 많은 걸까? 소설인데 왜 이렇게 대사를 찾기가 힘들지? 은근히 작품이 까다로운데? 어 이게 끝이야? 서술적 특이함, 단편이라는 형식 속에서 더욱 드러나는 작가의 특이함은 이후 본격적으로 독자들을 압박하게 될(그리고 엄청난 학문의 집합체 속에서 압사하게 될)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의 전초전이기도 하다.
불한당들의 세계사를 통해서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의 참 맛을 알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요한 부분까지도 생략해 나가면서 정보를 압축시키고 외적 정보와 사실들을 삽입하면서 리얼과 픽션의 경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보르헤스식 단편 소설의 경이로움(즐거움을 넘어)이 어떤지 윤곽을 그려볼 수 있고 그의 작품의 매력, 스타일을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특히 갱스터 스토리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함께 보르헤스의 지적인 유희들이 곳곳에 센스를 발휘하면서 작품 자체로도 매력이 넘친다. 무한하게 펼쳐질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앞에서 독자들을 맞이할 수 있는 작품인 것이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괴도 키드
- 코난
- 야쿠시지 료코의 괴기사건부
- 우라사와 나오키
- 이노우에 타케히코
- 버지니아 울프
- 율리시스
- 은혼
- 불새
- 마츠모토 타이요
- 리얼
- 센티멘탈 그래피티
- 명탐정 코난
- 타카하시 루미코
- 아다치 미츠루
- 원피스
- 카타야마 카즈요시
- 태그를 입력해 주세요.
- 카키노우치 나루미
- 아오야마 고쇼
- 타나카 요시키
- 오다 에이이치로
- 클램프
- 제임스 조이스
- 매직쾌두
- 밀란 쿤데라
- 센티멘탈 져니
- 타케우치 나오코
- 토리야마 아키라
- 테즈카 오사무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