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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와 같은 로맨틱 코메디 또는 러브 코메디 장르가 꾸준한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마츠모토 이즈미의 ‘오렌지 로드’(집영사의 주간소년점프 1984년 15호부터 1987년 42호까지 연재-1986년 15호부터 87년 11호까지 휴재가 있었음), 타카하시 루미코의 ‘메존일각(도레미 하우스: 소학관의 청년지 빅코믹 스피리츠 1980년 창간호부터 1987년 19호까지 연재)’의 대히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소년지와 청년지에서 각각 성공을 거두면서 수많은 미디어로 재생산되고 현재까지도 꾸준히 사랑 받으면서 수많은 만화팬들에게 화자되는 명작으로 기억되는 작품을 넘어서 이후 만화계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강담사의 소년매거진에서 연재한 아카마츠 켄의 러브히나(러브 인 러브)를 비롯하여 수많은 메이저 잡지들에서 연재되었던 로맨틱 코메디 장르에 하나의 방정식을 제공하였다.
특히 오렌지 로드의 경우 에피소드 구성 형식, 캐릭터의 속성과 등장 인물들의 관계도 등 기본적인 설정은 수많은 로맨틱 코메디 작품에서 일정한 포맷에서 변형된 형식으로 차용되었으며 오해와 엇갈림이 만들어 내는 타이밍 감각, 그리고 소위 ‘독자서비스’라고 불리게 되는 노출 장면을 연출함에 있어 교과서처럼 작용하면서 로맨틱 코메디 장르를 본격적으로 열게 한 장본인으로까지 평가 받게 된다.
메존일각은 오렌지 로드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아니지만 청년지라는 연령층에게 있어서 만큼은 보다 확장된 개념의 로맨틱 코메디를 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여성작가 특유의 감성을 청년 만화잡지에 녹여내면서 특유의 번뜩이는 예측불허의 개그감각을 더해 이후 청년지에서 연재되는 로맨틱 코메디물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고, 오랜 세월 동안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소년지의 오렌드 로드, 청년지의 메존일각으로 대표되는 로맨틱 코메디의 걸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소년지에서 데뷔하여 소학관의 주력 잡지인 소년선데이에서 우루세이 야츠라(시끌별 녀셕들)-란마1/2을 연재해 오면서 소년지 특유의 활기참과 여성작가의 감수성, 그리고 청년지에서 보여준 절제 된 연출이 빛을 발휘하면서 구독 연령이라는 소년지에서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로맨틱 코메디물의 벽을 넘어 청년지를 통해 마음껏 보여주며 로맨틱 코메디물의 장점을 살려내었다.
물론 오렌지 로드나 메존일각 이전에도 이러한 성격의 작품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로맨틱 코메디라는 장르의 인식에 있어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고 본격적으로 확립시켰다는 점에서 이 작품들을 시점으로 평가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발 앞서(1980년~1984년 소학관 빅코믹 연재) 연재한 아다치 미츠루의 ‘미유키’야 말로 현재의 Trend를 정확하게 예측한 로맨틱 코메디물의 걸작,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로맨틱 코메디(러브 코메디)물의 모습을 보여준 걸작이 아니였나 생각한다.
‘미유키’가 훌륭한 작품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리고 로맨틱 코메디 또는 러브 코메디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이며 오렌지 로드와 메존일각에 못지 않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작품 자체만 놓고 본다면 두 작품 이상의 평가를 받는 작품이기도 하다.
미유키가 로맨틱 코메디라는 장르에 있어 오렌지 로드나 메존일각만큼의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 ‘아다치 미츠루’라는 작가 때문은 아니였나 생각한다. 미유키를 평가함에 있어 로맨틱 코메디 또는 러브 코메디라는 테두리 안에서 평가하는 것보다는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세계”에서 평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오렌지 로드나 메존일각과는 달리 미유키를 평가함에 있어서 비교 대상은 기타 다른 로멘틱 코메디물이 아니라 아다치 미츠루의 다른 작품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로맨틱 코메디물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있어서 전혀 다른 위치로 인식되어 버린 것은 아니였을까?(미유키는 보통 오렌지 로드, 메존일각과 함께 로맨틱 코메디-러브 코메디물의 TOP3라기보다는 터치, 러프, H2와 함깨 아다치 미츠루의 4대 걸작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아시다시피 미유키와 동시대에 등장한 ‘터치(1981년부터 소년선데이 연재)’의 존재는 아다치 미츠루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미유키’라는 작품의 빛을 다소 바래게 만든다. 미유키 역시 판매량이나 미디어믹스의 성과, 그리고 이후 지속적인 꾸준함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히트작이지만 터치의 히트에는 미치지 못한다. 또한 작품의 평가에 있어서도 소년지의 경계, 스포츠 만화의 성격 등 만화계의 판도를 엎어버릴 정도로 큰 영향을 보여주었던 ‘터치’는 ‘미유키’ 보다 높을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미유키를 언급함에 있어 항상 따라다니는 작품은 터치였으며 미유키는 일부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 또는 아다치의 진정한 명작으로 평가하는 터치에 가리워진 숨겨진 진정한 명작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이라는 것은 동시에 이후 매너리즘에 빠진 지나친 자기복제로 인해 ‘아다치 스타일’이 정형화되면서 더욱 족쇄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소녀만화잡지인 ‘챠오’에 슬로우 스탭을 연재하고 ‘미소라’처럼 아다치의 작품 세계를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아다치가 ‘아다치 스타일’로 직구를 던질 수 밖에 없었고 나중에는 터치와 동일한 세계관을 지닌 ‘믹스’라는 작품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같은 아다치 스타일은 다른 작가, 다른 작품으로 하여금 영향력을 미치면서 아다치 작품의 색깔을 입혀주지 못하고 결국 아다치 미츠루만의 고유한 작품 색깔로 굳어지게 된다. 오렌지 로드가 다양한 요소들을 다른 작가, 다른 작품들에게 비슷한 이미지를 전승해가며 자유롭게 오렌지 로드의 구성 요소, 연출요소들이 활용되었다면 아다치 미츠루는 아다치 미츠루 자신 외에는 다른 작품에 자신의 작품 세계를 허용하지 않았다.(아니 허용할 수 없는 고유성을 지닐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미유키가 높은 인기를 누린 히트작이면서 명작으로 평가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세계의 고유성으로 인해 로멘틱 코메디의 걸작으로 평가받으면서도 오렌지 로드처럼 로맨틱 코메디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게 된다.(로멘틱 코메디 계열의 작품들을 평가하면서 ‘오렌지 로드’ 또는 ‘아유카와 마도카’라는 언급이 자주되는 경우는 많지만 ‘아다치 미츠루’ 또는 ‘미유키’라는 언급은 그다지 많지 않다.)
미유키는 분명 최고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세계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로맨틱 코메디 또는 러브 코메디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평가할 때 미유키가 보여준 모습들은 여타의 다른 로맨틱 코메디를 뛰어넘는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며,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로맨틱 코메디의 모습을 지닌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2000년대 들어오면서 ‘미소녀물’이라는 단어로 규정되어지는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수준 이하의 일부 작품들을 보면서 ‘미유키’의 훌륭함은 더욱 빛나 보일 수 밖에 없다.
아시다시피 아다치 미츠루는 초기 자신의 작품 스타일에 혼란을 겪으면서 소년지에서 연재지를 옮겨 소녀만화잡지(순정만화잡지)에서 연재를 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소녀만화잡지를 거쳐간 경험은 그에게 있어 자신의 장점을 발견함과 동시에 로맨틱 코메디라는 장르에 있어서 굉장히 강력한 무기가 된다. 순정만화 특유의 감성과 소년만화 특유의 심플함이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조화되면서 단순한듯 세심하게 표현되는 감성의 마법, 유하게 그려진 캐릭터 뒤로 세밀하게 표현된 배경 같은 느낌을 함축하며 순정만화 같은 소년만화로 탄생 될 수 있었고 이는 곧 ‘미유키’의 필연적인 등장과 함께 미유키의 대히트를 당연하게 만들었다.(이후 터치와 러프, H2 등 아다치의 작품들에 대한 보증수표가 되기도 한다.)
말없이 자연스럽게 전해오는 “이심전심”의 미학은 미유키를 통해 본격적으로 폭발하며 아다치 미츠루의 전매특허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대사 하나 없이 표정과 분위기만으로 전해오는 감정의 흐름은 놀라울 정도로 세밀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표현하면서도 과감한 생략과 여백의 미학을 살려내며 로맨틱 코메디에서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였다. 치밀함 또는 정교함의 극치를 달리는 밀고 당기는 감정의 줄다리기, 오해와 엇갈림이 낳은 우연의 미학, 우유부단한 주인공의 흔들리는 마음, 그리고 반복되는 평행선 등 로맨틱 코메디의 황금공식이 아다치 미츠루의 연출을 통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었다. 로맨틱 코메디물의 진수를 느낄 수 있으며,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로맨틱 코메디물의 걸작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다치 미츠루의 걸작으로 다가올 수 있도록 전형적인 아다치 미츠루표 작품이면서도 로맨틱 코메디물이 갖추고 있어야 할 미덕들을 훌륭하게 펼쳐내었다.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라는 클리세, 여동생이라는 모에적 기호를 살려낸 캐릭터, 평범한 남자주인공을 좋아하는 학교 최고의 인기 히로인이라는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역발상,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변해가는 계절 속에서 반복되는 이벤트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에피소드 등 변함없이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인물관계와 이야기 구성들로 공식화되어 깔끔하면서도 다채롭게 들려주고 있다. 어디선가 본듯한 인물, 어디선가 들은 듯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재미있는 이야기, 로맨틱 코메디물이기 때문에 더욱 더 즐거운 이야기들을 가득 담았다.
로맨틱 코메디물에서 우유부단한 주인공이 우유부단함을 깨는 순간 작품은 끝이 난다. 그리고 아다치 미츠루는 마무리 되는 순간을 그 어떤 작품보다 멋지게 연출해 낸다. 만화에서도 삽입되어 있는 TV애니메이션의 엔딩곡이기도 한 H2O가 부른 ‘추억이 가득’의 노랫말처럼 흘러가는 시간, 변해가는 계절의 추억들을 가득 담고서 영원히 잊지 못한 잔잔한, 그리고 깊은 여운을 남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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