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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뫼르소의 모습에 대해 어디까지 공감을 느꼈을까? 만일 뫼르소의 모습에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납득하고 공감하게 된다면 세상에 대한 진정한 ‘이방인’이 되는 것은 아니였을까? 그리고 뫼르소의 행동에 조금이라도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 역시 ‘이방인’으로 삶을 원하는 본능이 잠재되어 있는 것은 아니였을까?
뫼르소를 둘러싸고 있는 인간관계는 ‘타인’이라는 단어로 규정지어지는 듯 하다. 물론 ‘타인’의 위치가 동일선상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이분법을 놓고 본다면 뫼르소의 인간관계는 자신과 타인으로 구분되어가는 것 같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무감각하게 행동하며 자신의 귀찮음만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듯 하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준다거나 다른 누군가로부터 도움을 받길 원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습은 찾기 힘들 정도다. 타인을 관찰하는 시선도 무미건조하고 무덤덤할 수 밖에 없으며 어떠한 간섭이나 참견조차도 그에게 있어서는 귀찮은 일로밖에 없는 듯 하다. 심지어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조차도…
어떻게 보면 나를 빼놓고 이 사건을 다루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법정이라는 무대 위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인물은 뫼르소 자신임에도 뫼르소는 이방인의 이미지로 굳어지게 된다. 이방인이기 때문에 변호사의 이야기도, 판사의 이야기도, 배심원들의 모습조차도 그에게 있어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자신의 삶이 타인에게 결정되는 과정이 모두 그에게 있어서는 부조리하게 비춰지는 귀찮은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에게 있어서 삶은 그런 의미가 아니였을까? 삶의 가치에 대해서, 그리고 행복의 가치에 대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가길 바라는 행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버릴 정도로 그에게 있어서 삶이라는 것은 ‘죽음’이라는 결말로 수렴되는 동일한 궤적으로 비춰진 것은 아니였을까? 삶과 죽음은 대극의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죽음으로 향할 수 밖에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죽음의 순간 자신의 삶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뫼르소는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스스로 나아가는 죽음의 순간(사형집행 날) 사람들의 인파 속에서 증오의 함성을 원했다. 이방인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증명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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