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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백년 동안의 고독

sungjin 2012. 9. 12. 14:19



1925년 독일의 미술평론가 프란츠 로는 후기 표현주의 회화양식을 지칭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마술적 리얼리즘”

하지만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고 난 후 처음으로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에는 미술사조에서 나온 용어일 줄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딱!“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이 작품에 어울리는 평가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들려주는 환상적인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작품 속에 스며들어 있다. 처음부터 당연시 되고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는 그야말로 기이하고 신비로운 주술적 이미지가 곳곳에 삽입되어 있다. 논리적인 설명 하나 없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어느 새 자신도 모르게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마콘도의 세계 속에 빠져든다. 일반적인 상식을 초월한 상상력이 발현되어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관은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어뜨린 몽환적인 이미지마저 풍겨온다. 등장인물들이 많고 복잡하게 인물 관계가 엮어 있어 상당부분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는 내내 흥미를 끌 수 있었던 이유도 작가가 구현화시킨 마콘도라는 가공의 무대를 완벽하게 주술적 신비로움이 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는 환상이 일상화 된 현실감이 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당히 접근하기 까다롭고 읽는 내내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이 작품에서 손을 떼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다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이유도 작품에 대한 해석을 떠나 기본적으로 ‘백년 동안의 고독’은 환상 문학의 장점이 독특한 형태로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상황, 기막힌 패러디가 돋보이는 상황 그리고 곳곳에서 펼쳐진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들을 통해 유머러스함까지 갖추면서 비극으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는 처절한 부엔디아 가문의 100년간의 고독하고 폐쇄적인 내용을 침몰시켜 그 무거움에 가라앉지 않도록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으름과 끝없는 망각의 탐욕스러움이 그들의 추억을 조금씩, 그러나 가차없이 침식하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이 작품은 또 다른 리얼리즘이 구현된 문학이기도 하다. 작품에 대한 평가를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었던 이유도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 담겨져 있는 수많은 메타포들은 신화적,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모티브로 녹여 낸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이름, 등장 인물의 행동, 마콘도라는 가상의 도시가 보여주는 반복되는 역사의 모습들, 근친으로 시작해서 근친으로 마무리 될 수 밖에 없는 터부시 되는 내용 등 모든 것들이 거대한 데이터 베이스를 축적하고 백그라운드로 작품 위에 겹쳐낸다. 의도치 않는 폐쇄성과 고립성은 세계와의 교류가 없었던 라틴 아메리카의 모습을 담았고, 침입, 착취 그리고 망각으로 반복되는 사건 속에 라틴 아메리카의 잊혀지지 않는 역사를 담아내었다. 등장인물들의 행동, 이름 등에도 신화적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토속적인 분위기를 담아내며 작가는 작품 속에 방대한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와 신화 그리고 문화를 작품 속에 압축시켰다.

마르케스는 ‘백년 동안의 고독’을 통해서 모든 것을 담고 싶었던 것이 아니였을까? 소설 속 시간과 공간을 무대로 영원히 잊혀지지 않고 후손까지 이어지길 바랬던 라틴 아메리카의 이야기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