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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모순 by 양귀자

sungjin 2012. 9. 10. 22:42



"우리들은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한다.”

‘원미동 사람들’에서 보여주었던 소시민적인 삶의 이야기들은 ‘모순’에서 접어두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또 다른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싶었던 것일까?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였음에도 상반 된 삶을 살아야 했던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놓고 모순 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주인공 안진진의 이야기 속에서 독자들은(아니 어쩌면 나 혼자일지도 모르겠다.)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지 않나 생각한다. 삶이라는 것은 이토록 모순으로 시작해서 모순으로 끝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모순’을 읽고 난 후 이 책에 내게 답해 준 것은 ‘삶이란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였다. 왜 이모의 선택지는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진진의 선택지는 왜 그렇게 결정되는 거지? 내가 아직도 타인의 삶에 대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의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일까? 의문만을 남긴 채 모순의 이야기를 끝을 맺게 된다.

하지만 실제 작품을 읽는 동안 느끼는 감정은 “?”이라기 보다는 “!”로 가득하다. 의문사마저도 즐겁게 넘어갈 수 있는 느낌표마저도 행복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자연스럽게 풍부한 감성의 조각 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가슴을 적신다.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젊은 날의 모습이 아니라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삶의 긍정적인 모습들이 곳곳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물질적 풍요로움에 부러움을 보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현실 속에 작가는 여성 작가 특유의 감성을 담아 일상의 작은 행복으로 바꾸어 버린다. 부와 가난, 이상과 현실, 행복과 불행이라는 대립되는 관계 속에서 전형성을 지닌 별볼일 없는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다시 한번 일깨워주며 삶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든다. 타인의 불행으로 자신의 불행을 극복할 수 밖에 없으며 자신의 상처를 위로하는 방법은 타인의 상처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십대라는 젊음의 무기를 ‘사랑’으로 도배하는가 하면, 결국 현실 앞에서 힘없는 모습을 보이고 이상 앞에서 당당해 지기 위한 우리들의 느낌표가 있기 때문이다.

모순의 이야기는 유쾌하다. 삶의 진솔한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에 인간적인 웃음을 자아낼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있다. 여전히 꿈을 꿀 수 밖에 없는 나이이기 때문에 돌아서 생각하면 부끄러워 하며 웃을 수 밖에 없는 추억이 있다. 전체적으로 가볍고 속도감 있게 쓰여진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모순’의 이야기 속에 빠져들게 되고 살며시 미소 짓게 된다. 마치 나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삶의 즐거움과 후회 속에서 가치를 찾아내게 된다.

안진진… 참 진을 두 번 반복했음에도 이름 앞에 붙어있는 “안”이라는 성으로 인해 결국 모순적인 이름이 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모순으로 채워진다. 세월을 겪은 아버지의 모습, 전혀 다른 삶을 걷게 된 엄마와 이모의 삶, 동경할 수 밖에 없는 주리의 삶을 통해 펼쳐지게 되는 행복과 불행의 모순, 여전히 꿈을 꾸는 허황 된 남동생, 그리고 사랑을 보여준 김장우와 현실을 보여준 나영규의 모순 된 선택지에 이르기까지… 마치 우리들의 삶 자체가 모순으로 뭉쳐져 있는 것처럼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모순과 계속해서 부딪히게 된다.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소설을 이야기를 마치게 된다.

"인생은 탐구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이다. 실수는 되풀이된다. 그것이 인생이다..."

‘모순’ 그자체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일까?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잘못 될 수 밖에 없는 선택. 모순적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선택… 실수가 많을 수 밖에 없고, 계속해서 실수가 되풀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래서 삶은 후회가 필연 적일 수 밖에 없지만 그것이 삶의 의미이고 가치라고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PS ‘양귀자의 작품 중 가장 훌륭한 작품이 ‘모순’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니요.’라고 자신있게 답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싶은 양귀자의 작품이 있다면 ‘모순’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예.’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사실 ‘원미동 사람들’이지만 웬지 외면받을 것 같아서…) 일인칭의 시점에서 발랄하면서도 감수성이 넘치는 문장들이 반짝인다. 동경할 수 없는 아니 피하고 싶은 삶의 모습 속에서도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낼 수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읽고 난 후에도 한번쯤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 깊은 감동을 받은 것도 아니고 이 작품에 감탄하지도 않았지만 언제나 한번씩 생각나는 작품, 그리고 지나치기 쉬운 곳에서도 다시 한번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었던 작품이였던 것 같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이 작품에 대해 개인적으로 평가를 내리게 된다면 “부정적”인 의견이 상당부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흠잡을 곳이 많은 작품임에도(특히 과거 원미동 사람들을 썼던 작가라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웬지 이 작품만큼은 변호를 해주고 싶다. 내게 있어 ‘모순’은 그런 작품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