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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sungjin 2012. 9. 1. 23:10



밀란 쿤데라는 테레자와 토마시, 사비나와 프란츠를 통해서 각각의 인간의 내면을 구성하는 본성과 환경적 속성에 따라 가벼움과 무거움이라는 존재로 구분하였다. 운명적 만남을 단정짓고 토마시와의 사랑을 추구하는 테레자는 무거움, 무언가로부터 끊임없이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비나는 가벼움으로 대표된다.(여기서는 이것을 ‘배반’이라고 이야기한다.) 반면 토마시와 프란츠는 무거움과 가벼움으로 단정짓기에는 약간 모호하다. 토마시는 가벼움이라는 삶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에게 주어진 것들은 무거움이다. 토마시의 생활은 자유롭고 어딘가로 날아가고 싶은 가벼운 모습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 테레자라는 무거움을 공유할 수 밖에 없으며 체코의 정치적, 사상적 상황이 그를 무거움으로 몰아넣게 된다. 반대로 프란츠의 삶은 무거움으로 구성되어 있는 듯 하나 그는 가벼움을 추구하려 한다.

독자들로 하여금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해 각각의 입장에서 모호한 삶의 의미를 의문점으로 남긴 작가는 마지막까지 명쾌한 해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작품 속에서 작가 스스로 밝혔듯 세상에서 가장 모순적인 대립관계를 지니고 있는 무거움-가벼움의 관계에서는 그 어느 것도 우위를 두지 않은 채 무거움에 대해서, 그리고 가벼움에 대해서 번갈아가며 삶의 모습들을 대입시켜 나간다. 삶에 있어서 가장 비논리적인 ‘사랑’을 통해 밀란 쿤데라는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려고 하지만 이 또한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결국 가벼움-무거움의 이야기는 답이 없는 끝없는 논쟁처럼 독자들에게 흥미진진한 거리를 던져주게 된다. 

무거움에 위치한 테레자와 가벼움에 위치한 사비나, 두 사람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토마시의 존재는 현대인의 모습과 같다.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무거움에 구속되기도 하며 가벼움을 추구하기 위해 또 다른 삶을 영위해 나간다. 이 같은 경계선을 넘나드는 토마시의 삶은 개인의 생활만이 아니라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국가적 이념 또는 사상까지 넘나들게 된다. 의사라는 위치에서부터 유리닦이와 트럭 운전수로 대입되는 계층을 이동하며 정권의 비판에 구속되어버리는가 하면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자유로움을 획득하기도 한다. 결국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모든 것을 털어버린 가벼움이 토마시의 삶에 위치하는 듯 하지만 그의 삶이 그려나간 궤적은 정확하게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기에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우리 인생이라는 밑그림은 완성작 없는 초안, 무용한 밑그림이다.

결국 인생이라는 한번뿐인 삶에 있어서 무거움 가벼움을 구분하고 우위를 두는 것 자체에 큰 의미는 없을 지도 모른다. 작가는 각자의 삶에 대한 방식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대하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의 궤적을 어떻게 그려나갈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답할 필요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삶의 마지막에 이르면 밑그림 없이 한번에 그려낸 개개인의 작품이라는 점에서는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