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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마의 산 by 토마스 만

sungjin 2012. 8. 15. 15:42




독설은 비판정신이며 비판은 진보와 계몽의 원천입니다.

문학이란 사실 인문주의와 정치의 결합이며 인문주의가 정치가 되고 정치가 인문주의가 될 때 문학이 한층 더 무리없이 완성된다. 

위대한 도덕가는 덕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악을 두루 모험하는 사람이다. 

토마스 만을 ‘마의 산’을 읽으면 자신도 모르게 침몰되어 버린다. 아니 침몰이라기 보다는 마의 산의 이야기에 압도되고 넘을 수 없는 벽에 막혀 자기도 모르게 갇혀버리고 마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마의 산의 이야기는 세상과 동떨어진 경계선산에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독자들을 조금씩 중독시켜간다.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사상의 끊임없는 부딪힘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에 읽으면서 자신의 지적 한계에 직면하게 되면서 재미를 잃어버리고 책에서 손을 놓게 될 법도 한데 이상하게 마지막까지 결국 페이지는 넘기게 된다. 마치 마의 산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처럼 마의 산에 갇혀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마의 산의 이야기들은 지적인 한계나 정보의 이해력과는 상관 없이 쏟아지는 논쟁의 부딪힘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일종의 논쟁게임이기 때문이다.

마의 산에서 큰 축을 이루는 세템브리니와 나프타의 논쟁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대결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전혀 다른 색깔을 가진 팀들이 전력을 다해 펼치는 치열함이 느껴진다. 국가라는 존재에 대해서 한쪽은 국민의 의지가 발현되었다고 이야기하면 다른 한쪽은 국민의 뜻이 반영된 국가에 신의 의지가 빠져 있다며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된다. 문학이라는 산물은 이해력을 높이고 도덕적 세련성을 유발하고 어리석음을 약화시켜준다고 이야기하면 다른 쪽에서는 수사학으로 뭉쳐진 문학의 형식은 기만적이고 사기적인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이처럼 마의 산은 세템브리니와 나프타라는 대립적인 구도를 통해 시종일관 논쟁을 펼치며 지적 즐거움을 준다. 특히 이 작품이 주는 지적인 즐거움은 단순히 상상적 철학적 사고력의 깨우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가치관들이 만나면서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싸움의 재미가 함께 하기 때문이다.

자연과학 또는 응용과학에 속성을 지닌 주인공의 존재(작품 속에서 한스 카스토르프는 ‘엔지니어’라고 불리고 있다.)는 이 같은 인문과학의 소용돌이 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자연과학에 본적을 두고 인문학의 논쟁에 뛰어들면서 주인공이라는 위치에서 관객 또는 청중의 입장을 고수하는가 하면 때로는 무게추를 기울이기도 한다.

폐쇄적이고 고립 된 베르크호프 요양원에서 머무는 시간의 흐름은 상대적으로 흘러가며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들조차 마의 산에서 흐르는 시간의 감각을 마비시켜 버린다. 시간의 흐름은 하루 동안의 일도 7년 동안의 일도 동일하게 느껴진다. 한스 카스토르프의 이야기를 금방 끝내버리지 않을 작정이라고 이야기했던 토마스 만의 의도대로 마의 산을 읽는 동안의 시간은 한없이 길게 느껴지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면 그렇지도 않게 느껴진다. 시간 감각의 마비는 다른 것에서도 영향은 미치게 된다. 극도로 제한 되어 있는 소설의 무대는 거대하게 느껴지고 메인 캐릭터가 많지 않음에도 수많은 생각들의 홍수 속에서 양적 압박감에 시달리게 된다. 죽음에 가까이 노출되어 있는 지옥의 입구 같은 요양원은 주인공의 사고의 변화에 따라 삶에 대한 가치 철학을 더욱 추구하게 된다.

아이러니한 결말은 작품의 극적인 재미를 높인다. 삶에 대한 가치를 주인공에게 일깨워 준 페퍼코른은 자살을 선택하였고 인문주의자 세템브리니와 공산주의 수도자 나프타 역시 모순 되는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주인공은 7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많은 것들을 흡수하고 깨우침을 얻은 듯 하지만 결국 주인공의 마지막 역시 어떠한 정신적 성숙을 통한 인격적 완성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우리는 깊은 심연에 빠진 존재들”이라고 이야기하는 토마스 만은 독자들을 어디까지 심연 속으로 빠뜨리고 싶었던 것일까? 수많은 자연과학적 정보들을 작품 속에서 나열하면서도 독자들을 쉽게 이해시키며 지식의 즐거움을 전해주더니 결국 자신의 모든 사상과 철학 등 토마스 만이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을 작품 속에서 펼쳐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렸다. 거대한 벽 앞에 선 독자들이 벽을 넘기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기를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가는 마의 산을 통해 독자들을 빠뜨리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