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한테는 세상 모르는 철부지 소리처럼 들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하니까…”

 

언제나 치열하게 일하고 쉴때는 열심히 즐기고 과식과 과음을 반복하던 사업가였다.”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에 있는 겁니다.”

 

인간이 세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이상이 자기완성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 같은 평범한 대중은 모두 성공담을 좋아한다.”


 

면도날은 또 하나의 달과 6펜스다

 

물론 단순히 달과 6펜스의 연장선상에 놓기에 면도날의 이야기는 너무나 대극의 위치에서 달과 6펜스와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달과 6펜스가 누군가를 위한 헌정서()의 성격을 지닌다면 면도날은 누군가에 대한 헌정의 의미를 배제하고 보다 현실의 모델을 바탕으로 그려나간다. 철저하게 비현실적인 인물에 대한 관찰자 시점으로 압축해 나가는 달과 6펜스와는 달리 면도날에서는 관찰자의 시점에서도 보다 폭넓은 인간군상들을 그려나가며 공감대를 만들어 낸다. 극한의 예술적 삶의 이상을 위한 생명 에너지의 소모가 돋보였던 달과 6펜스와는 달리 면도날은 삶을 풍요롭게 가꾸기 위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추구한다. 이상으로 상징되는 달의 세계와 현실로 상징되는 ‘6펜스의 세계가 분리되는 것과는 달리 면도날의 세계는 실제 살아가는 아슬아슬한 면도날 같은 현실 위해서 이상의 모습과 대비되는 현실의 모습들이 동시에 제시된다. 달과 6펜스에서 예술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하게 고립되어 갔던 스트릭랜드와 달리 면도날에서의 래리는 인간집단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다.

 

작품의 모든 것이 대비를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작품 외적으로도 달과 6펜스와 면도날의 대비는 더욱 명확하게 된다. 작품이 발표 된 시기와 작가의 삶의 여유로움, 그리고 자신의 명성과 함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원숙미에 다다른 만년의 시기에 발표된 면도날이 달과 6펜스만큼의 처절함과 치열함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면도날의 이야기는 분명 달과 6펜스에서 한층 확대되고 다른 방향으로 연장된 또 다른 달과 6펜스다. 스트릭랜드는 그림을 그렸고 래리는 공부를 했던 것이다. 예술의 이상을 추구하였던 스트릭랜드와 삶의 존재가치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 래리의 모습은 분명 오버랩되는 공통 분모가 보인다. 물질이 아닌 정신의 가치를 위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방법이 달랐을 뿐 궁극적으로 두 사람의 영혼의 자유로움은 같은 것이 아니였을까? 극한으로 몰아가며 상상도 할 수 없는 처절함으로 생의 모든 에너지와 바꾸어 예술의 이상을 구현한 스트릭랜드의 이야기가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다면 면도날에서 래리의 모습은 보다 현실 위에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면도날의 이야기는 달과 6펜스를 현실적으로 변주시킨 다음 반복해 나간다. 근원을 따라 올라가면 하나의 줄기에서 시작되어 갈라지듯 두 작품의 모티브는 같은 곳에서 출발되었기 때문이다. 출발점에서 서로 다른 곳으로 흘러나와 대극의 위치에서 평행을 이룬다. 면도날은 현실 위에 올라선 스트릭랜드의 이야기이고, 달과 6펜스는 이상의 극한을 추구하는 래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서머셋 몸은 달과 6펜스의 이야기를 연장시키는 대신 같은 영혼을 가진 면도날로 다시 한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정신적 이상의 완성을 통해 보다 현실적으로 들려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스트릭랜드의 이야기가 현실감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신비로운 예술가의 꿈 같은 이상이 어딘가의 환상 또는 머나먼 존재가 되었다면 면도날의 래리의 모습은 가슴 한 구석에서 누구나 한번 쯤은 바래왔던 이상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