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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의 재능은 단편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일까?

보르헤스의 단편집 ‘알레프’의 이야기들은 읽다 보면 단편이라는 짧은 분량 내에서도 마치 백화점 같은 다채로움을 선사하고 있는 것 같다. 탁월한 지적 유희를 선보이는가 하면 독특한 아이디어에서 시작 된 신선함을 선사하기도 한다. 소설이라는 가상의 이야기 안에서도 실제의 사실과 허구의 요소들을 조합하며 실감나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작가의 방대한 지식의 창고를 통해 하나씩 펼쳐내는 사상과 철학, 그리고 기존의 학문적 이론도 뒤엎을 수 있는 가상의 이론들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줄 정도로 작가의 재능은 단순히 지적인 능력만이 아니라 소설가로서의 이야기꾼의 재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허풍마저도 진실처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 거짓말을 논리적으로 증명시켜 낼 수 있는 작가를 꼽는다면 바로 보르헤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알레프’의 이야기들은 보르헤스의 또 다른 단편집인 ‘픽션들’의 이야기에 비해 다소 편하다. 철학과 사상으로 뭉친 이론들이 압축되어 있던 ‘픽션들’과는 달리 ‘알레프’에서는 이 같은 요소들은 배제 또는 완화시켜 놓았기 때문이다.(그렇다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지만…) 특히 수록 된 대부분의 작품들을 환상 소설로 펼쳐내면서 신비롭고 기묘한 궁금증으로 작품에 대한 흥미도를 높여내었다. 보르헤스 특유의 수수께끼를 던진 후 의문점을 가지게 만든 후 마지막까지 따라갈 수 밖에 없는 이야기들이 환상 소설의 형식을 통해 보다 다채롭게 펼쳐진다. 죽지 않는 불사를 소재로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가 하면, 새롭게 반복되는 패러렐 월드를 통해 인생의 참 된 가치를 깨닫게 만들기도 한다. 작은 동전 한 닢 속에서도 깊은 지적 유희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무겁고 깊은 주제마저도 작품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내면서 독자들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화자를 통해 흐르는 에세이적인 성격, 지식을 통해 나열되는 문헌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에도 알레프의 이야기들을 환상 소설의 재미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장편 소설을 발췌한 듯한 느낌은 보르헤스의 단편을 읽는 또 다른 매력이기도 하다. 마치 필요한 내용만 뽑아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만을 들려주는 것처럼 각각의 단편들은 짧은 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이야기들이 압축된 것 같다. ‘픽션들’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그의 소설은 장편소설을 압축시켜 낸 단편소설 같다.’라고 한 이유 역시 이야기의 밀도를 높이거나 방대한 이야기를 요약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핵심만을 발췌한 느낌으로 그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사상과 이론, 철학적 메시지를 짧은 지면 위에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표제작이며 수록 된 단편이기도 한 ‘알레프’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낸 궁극적인 존재라고 한다. 추상적인 이야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보르헤스의 작품 세계를 가장 잘 말해주는 ‘알레프’처럼 보르헤스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담아내고 싶었던 것은 아니였나 생각한다. 불과 2~3cm의 작은 한 지점에 세상의 모든 것을 담아낸 ‘알레프’처럼 보르헤스 역시 단편이라는 짧은 분량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