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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이 주는 매력, 그리고 단편집이 주는 매력은 어떤 것일까?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짜임새 있는 구성과 스토리 전개로 밀도 있는 이야기에 빠질 수도 있고, 단편이기 때문에 가능한 실험성 짙은 신선함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기도 한다. 특히 짧은 지면 위에서 중의적이고 복잡한 메타포를 부여하기 보다는 가능하면 단순하고 확실한 복선으로 구성하여 단편의 매력을 최대한 살리면서 장편 소설에서는 느끼기 힘든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또한 작가의 초기 작품 또는 습작 시절의 작품에서부터 원숙미가 절정에 달한 후기 작품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필모그래피적인 구성을 통해 특정 작가의 팬들에게 자서전 이상의 즐거움을 주기도 하며, 특정 주제로 엮은 다수의 작가들의 단편 모음 등을 통해 올스타전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도 한다. 때문에 단편집은 단편 자체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각각의 단편들이 모이면서 개별적 단편이 지닌 외적 정보와 함께 단편들이 모여서 또 다른 외적 정보를 구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은 조금 특이하다. 단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구성이나, 단편집이기 때문에 막연히 기대하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신선함을 전해주고 있으며 이는 곧 놀라움으로 이어지게 된다. 감탄사를 지르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소설의 가능성에 대해 한 단계 더 높은 위치로 인식하게 된다. 작가의 지식에 경의를 표하게 되고 그러한 생각들을 이런식으로 소설로도 구현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픽션들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들은 한편 한편이 마치 장편 소설을 압축해서 구성한 것만 같다. 특히 이야기를 압축한 것이 아니라 소설을 통해서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사상과 철학, 그리고 다양한 학문들이 총망라되어 압축시킨 다음 서술되어 있다. 철저하게 소설이 지닌 픽션의 성격을 활용해서 소설임에도 소설이 아닌 문헌의 느낌을 삽입시켜 단편의 특성을 초월한 단편집으로 탄생시켰다.(이건 너무 오버하는 건가?) 터무니없을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이론들을 합리화시키는가 하면,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기도 한다.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수열 같은 끝없는 이야기, 뫼비우스의 띠처럼 자기 모순에 빠지면서 영원히 돌고 도는 이야기를 각각의 단편 안에서 환상적으로 펼쳐낸다. 실제의 사실과 허구의 픽션을 교묘하게 혼용하면서 독자들로 하여금 더욱 흥미진진하게 작품 속으로 빠져들 수 있게 하였고, 다양한 학문들을 자유롭게 펼쳐내면서 보르헤스의 지적인 위대함을 작품 속에서 증명시켜 주고 있다. 특히 짧은 단편 내에서도 사상과 이론들을 높은 밀도로 구성하면서도 소설의 재미를 잊지 않고 읽는 이들에게 묘한 설득력을 발휘하여 지적유희의 즐거움을 독서라는 행위 속에서 마음껏 경험할 수 있게 하였다.

 

인문학에서부터 과학에 이르기까지 학문 전반에 걸쳐 있는 작가의 생각과 이론, 사상들이 개별적으로 나열되어 있음에도 픽션들에 수록 된 단편들은 재미있다. 외적인 정보들이 많고, 단편적인 학문들이 독자들을 압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수수께기를 포함하고 의문을 던지며 마치 추리 소설 같은 어떠한 해답을 향해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단편들은 다음 페이지를 궁금하게 만든다. 또한 사고의 틀을 확장시켜 작품의 대한 해석을 다양한 분야로 대립시켜 나가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느끼게 만든다. 하나의 단편으로 끝내지 않고 단편을 통해 보다 다양하고 폭넓은 지적 유희, 정보의 바다, 자유로운 이론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단편이기 때문에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게 구성하기 보다는 장편 소설로 확대되지 않기 위해 단편을 통해서 완성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마음껏 실험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험성을 위해서는 단편이라는 형식에서 복잡하고 다양한 상징성을 부여하고 단편의 의미를 확대시켜 거대한 학문과 스키마를 이루도록 하였다.

 

픽션들의 이야기는 난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지루함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소설의 가능성 아니 단편 소설의 가능성을 매우 신선하게,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펼쳐내었다. 그것도 이야기의 궁금증을 담아서 마지막까지 읽어나갈 수 있는 흥미진진함을 담고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