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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전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작품 단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난 두말없이 “겐지 이야기(겐지모노가타리)”를 선택한다. 일본인들의 생활 속에 밀착되어 있는 하이쿠가 보여준 단시의 미학도 좋고 다자이 오사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도 훌륭하다. 바쇼의 국민적인 인기를 무시할 수 없으며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역시 빠지면 섭섭하게만 느껴진다. 특히 만화의 신으로까지 추앙 받고 있는 “테즈카 오사무”의 존재는 그야말로 절대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역시 “겐지 이야기”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이라는 나라의 고유한 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대를 넘어선 문학적 초월성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일본 특유의 모노가타리 문학의 정점에서 모노가타리 문학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며 일본의 근대 문학에서부터 현대 문학을 넘어 미래의 일본 문학을 예측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겐지 이야기가 선점한 자리는 결코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사를 통틀어서 찾아봐도 이 정도 수준의 작품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서정성이 가득 담긴 시구의 유려함과 문장의 아름다움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뛰어난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
겐지이야기의 큰 축은 “히카루 겐지의 복잡한 여성 관계”로 정리 된다. 물론 다양한 수많은 인물들과 시대적 관습, 문화가 함께 엮이면서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품이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의 흐름은 겐지의 복잡한 여자 관계와 후손들로 이어지는 또 다른 애정 관계로 간단히 설명 된다. 흔히 이야기의 줄거리상으로는 작품의 가치를 높이기 힘든 내용이다. 하지만 겐지이야기의 가치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어떻게 묘사하고 어떻게 연출하고 있는지를 통해서 드러난다.
서정성 짙은 문장이 자아내는 감성은 하나하나가 깊은 울림을 지니고 있다. 고이 간직해서 평생 감상하고 싶은 미술 작품처럼 겐지이야기의 문체는 아름다움의 정점에서 일본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유려한 글이라고 평가하고 싶을 정도다. 표현 능력에 있어 현재까지도 탄성을 절로 지르게 만드는 서정성은 작품 전편에 걸쳐 화려하게 수놓으며 깊고 잔잔하게 독자들의 가슴 속에 스며든다. 감수성 넘치는 문장들은 인물들의 내면의 보다 디테일하게 묘사할 수 있었으며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다가올 수 있게 하였다.
전편에 걸쳐 수록되어 있는 795수의 와카는 겐지이야기의 서정성과 유려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와카 한 수 한 수마다 시적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겐지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이 함께 하며 감성의 조각들이 자아내는 반짝임을 곳곳에서 펼쳐내었다. 일본인의 정서와 문화, 풍속, 신앙에 이르기까지 겐지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시구들은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독자들의 마음 속을 적셔가며 어느 새 무한한 감동의 여운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문학이라는 존재가 지니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감동’이라는 요소에 충실하기 위해서 겐지이야기는 감성의 반짝임을 극대화시켜내었던 것이다.
겐지이야기는 재미있다. 문학적 완성도나 문장의 미(美)가 아니라 히카루 겐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가 매우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작품의 이야기 구성이 방대한 스케일 속에서도 상당히 훌륭하게 짜여져 있으며 개별적인 에피소드마다 흐름의 굴곡을 절묘하게 맞추어 나가며 이야기의 흥미를 돋우고 있다. 이 작품이 천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어 오늘날까지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겐지이야기는 재미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학자들에 의한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연극으로, 만화로, 애니메이션으로 등등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수많은 패러디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겐지이야기의 이야기는 본질적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웬지 모를 두근거림을 주고 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참을 수 없고 뻔해!라고 외치면서도 빠져들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지금 와서 생각한다면 전형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익숙한 이야기지만 매번 흥미진진하게 즐길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일본에 존재하는 모노가타리문학과 일기문학 우타모노가타리 문학의 묘미를 극대화시켜 집대성 한다면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질문에 누구나 물음표를 달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11세기에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사실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이 정도로 시적인 아름다움을 끌어올린 훌륭한 작품이 현재까지도 없기 때문이다.
한 평론서에서는 이 작품은 “부처님이 계시를 주셔서 세상에 내린 작품”이라고까지 이야기한다. 정말 이 작품은 신이 만든 작품이 아니였을까? 이 작품의 저자로 알려져 있는 ‘무라사키 시키부’는 아시다시피 궁녀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궁녀가 아니라 정말로 관세음보살이였던 것일 까? 단순히 여류작가의 뛰어난 감성이 바탕이 되었다고 하기에는 겐지이야기는 문학성과 역사성, 그리고 시대의 모습을 담은 영원성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여성작가 특유의 감성과 일본의 고전문학의 유려함이 담겨 있는 일본문학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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