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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율리시스 제15장 – 키르케

sungjin 2012. 4. 3. 12:28



율리시스는 각 챕터마다 여러 가지 속성을 부여하여 성격을 달리 하였고 때문에 율리시스의 장르적 특성을 이야기 할 때에는 각 챕터별로 구분지어 이야기하는 편이 쉽다. 매 챕터마다 상징성에 확실한 경계를 그었을 뿐 아니라 문체나 연출 역시 차이를 두면서 이질적이면서도 하나의 전체적인 그림으로 바라볼 때에는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각각의 챕터의 독립성을 높여 하나의 단편으로써의 완성도도 높지만 그 챕터가 추구하는 기법의 형식에 있어서도 최고의 수준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챕터마다 유기적으로 맞물려 긴밀한 연관성을 지니게 만들었기 때문에 각기 따로 또는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주었다.

키르케의 장은 그런 점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가장 유기적인 장이다. 작품의 성격이나 형식에 있어서 가장 독특하면서도 성격을 달리한다. 의식의 흐름이라는 서술기법을 쓰면서도 의식의 명확인 인식 보다는 환각상태에서 진행되는 무의식적인 느낌이 강하며 내용에 있어서도 현실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환상 속에서 현실을 넘나들며 자유롭게 펼쳐지고 있다. 마치 키르케의 장만이 율리시스의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위치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긴밀하게 율리시스의 전체적인 내용과 이어져 있는 장이기도 하다. 블룸과 스티븐의 가족 관계를 통해 그들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었던 갈등의 원인과 오해가 풀어지기도 하며 무의식적인 욕망이 발현되면서 앞선 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우스꽝스런 형태로 다시 들려주기도 한다. 결국 키르케의 장을 즐기기 위해서는 환상적 분위기와 서술 기법이 자아내는 마법에 취해 그 자체만으로도 환상적이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스티븐과 블룸에 대한 인물 관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며 그런 점에서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키르케의 장은 몽환적이다. 조이스의 변태적 속성이 극대화되어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선 초월적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술에 취한 환각 상태를 서술하기 위해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허물어 뜨리는 과정, 사물로 동물로 또는 남자에서 여자로 등 다양한 형태로 무의식적인 욕망의 발현에 따른 변신 등 환상 속에서 상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구현된다. 꿈 속으로 빠져들지 않았기 때문에 완벽한 무의식이 아닌 현실과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초월적 상상력의 진수를 만끽 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다양한 패러디와 재치 넘치는 감각은 조이스의 변태적 속성이 더해지면서 최고의 재미를 선사한다. 만일 이 작품을 환상 문학의 위치에서 평가한다면 가장 높은 위치에 두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키르케의 장이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인상 깊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마음 한 구석에 결핍되어 있는 그들의 심리적 불안감이 어느 정도 해소되고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감동받게 된다. 조이스의 변태성이 극에 달한 장이지만 웃음 속에 감성이 녹아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어찌 보면 키르케의 장은 “피네간의 경야”를 위한 전초전이였는지도 모른다. 율리시스에서는 술에 취한 환각상태에서 이야기를 진행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율리시스는 낮의 이야기이고 의식의 세계를 다룬 이야기기 때문에) 때문에 조이스는 이번 작품에서는 시도할 수 없었던 꿈의 영역을 다음 작품으로 넘기고 그 대신 키르케의 장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