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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개미

sungjin 2012. 2. 4. 21:17


‘개미’는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품 세계의 완성형이다. 그가 작품을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것들,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것들이 모두 담겨 있다. 개미 이후 그가 발표한 작품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이후의 작품들이 개미라는 작품의 형태의 파편화 또는 일부의 변형과 재생산에 그칠 정도로 개미라는 작품은 베르베르 베르베르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면서도 전체를 포괄하고 있다.

개미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모든 역량이 담겨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처음 소설가로 데뷔하면서 세상에 내놓게 되는 작품답게 그가 이제까지 축척해오고 있던 저널리스트로서의 역량과 오랜 세월 동안 관찰해온 곤충에 대한 지식, 그리고 평소 그가 즐겨 읽어오던 다양한 방면의 잡학들을 마음껏 펼쳐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많은 개작을 거쳐 나온 작품이기 때문에 시간이라는 커다란 장점이 더해져 작품의 세계관을 보다 깔끔하게 완성시켰고 사건의 전개나 상황 등을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인간들의 세상’과 ‘개미들의 세상’ 그리고 이 둘을 연결하는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이라는 세개의 축을 따라 흐르며 베르나르식 다르게 생각하기, 미지의 세계와의 만남과 공존, 그리고 그가 소설을 통해 끊임없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와 정보의 조합을 통한 지식의 전달을 완성시켰다. 각기 다른 두 세계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유지시키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충실하였고, 세계의 경계선상에서 다양한 정보를 나열하면서도 작품 속에서 유기적인 관계성을 유지시켰다. 특유의 해학과 유머러스함을 담아 즐거움을 주기도 하였다. 다른 시각에서 사물을 바라보고 사고의 틀을 넓히려고 하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평생의 테마를 강하게 녹여내면서도 독자들 흥미를 더욱 강하게 끌어낸다.

작품 속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개미’라는 작품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된다. 잡학 에세이가 전해주는 진실에서부터 엉터리까지 두루두루 걸쳐 있는 지적인 즐거움은 작품의 절대적인 지배자와도 같은 존재로 자리잡고 독자들과 함께하는 상상력의 여행의 또 다른 길잡이가 될 수 있었다. 개미의 세상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하였다. 개미들의 전투장면 하나하나에서도 박력이 넘치는 것은 물론이고 개미들의 전투 자체만으르도 처음 접하는 독특한 경험이 될 수 있었다. 개미들의 생활 하나하나가 마치 호기심 천국과도 같은 신선함으로 채워놓았다. 작가가 오랜 세월동안 관찰해온 정보가 특유의 상상력과 합쳐지면서 개미들의 세계 모든 것을 이제껏 접해보지 못했던 경험을 만끽할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103683호가 들려주는 인간세상에 대한 평가가 여러 작품에서 들었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감동을 느낄 수 있었고, 해학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될 때 쾌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이유 역시 다른 세상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베르베르 베르베르는 뛰어난 문장력을 지닌 작가는 아니다. 또한 상상력과 아이디어에 기초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초월적 상상력의 저편에서 독자들을 감탄시키는 기발함을 선보이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개미에 한해서 만큼은 보다 높은 평가를 내려도 되지 않을까? 필력이나 문체, 기교가 훌륭하지 않아도 다른 장점이 있다면, 그리고 그 장점에 대해 높은 가치를 주고 싶다면 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왔지만 개미만큼의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고 있다. 상업적으로는 좋은 결과로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작품에 대한 자기 복제와 지나친 베르나르 베르베르식 클리세가 작가로서 발전 된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제자리를 돌기만 하거나 때로는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마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개미”라는 작품이 다른 모든 베르베르의 작품을 평가절하시켜 버릴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자신의 작품 세계가 가야 할 종착역에 너무 빨리 도착해 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때문에 베르나르 베르베르 자신은 다시는 이런 작품을 발표하기 힘들지 않을까? ‘개미’를 쓰던 시절만큼의 시간을 가지기도 힘들뿐 아니라 그가 가진 모든 것들을 이미 개미에 쏟아부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