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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이나 언어학 뿐 만이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잡학다식함을 보여주고 있는 공부벌레다. 그가 그 동안의 수많은 저서에서 알 수 있듯 에코의 머리 안에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적 호기심에 대한 욕망이 숨쉬고 있는 것 같다.

에코의 소설은 이 같은 잡학다식함의 결정체다. 물론 그가 가진 지식의 다채로움이 모두 펼쳐진 것은 아니지만 소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자랑 아닌 자랑으로 보일 정도로 한가지 테마를 잡기 시작하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에코 선생님! 선생님 똑똑 한 거 잘 알고 있으니까 이제 그만 좀 하세요!”라고 이야기해도 멈출 수 없을 정도로 그가 소설에서 보여주는 잡학다식함은 마치 거대한 해일이 밀려오는 것처럼 독자들이 미처 다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속도와 양으로 압박한다.

특히 소설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 같은 잡학다식함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단 하나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엉터리를 완벽하게 만들기 때문에 에코의 소설은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존재하지도 않은 이론서를 존재시킨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역사를 서술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음모를 최종적으로 실행시키는데 성공한다. 가공의 인물을 탄생시킨다. 오늘날에 상식이 되어 있는 과학적 이론마저도 뒤엎어 버린다. 개인의 기억마저도 가공시켜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사실의 유무는 중요하지 않다. 아니 사실의 유무를 판단할 틈 조차 주지 않을 정도로 치밀하게 둘러싸고 방대한 물량공세를 통해 독자들을 항복시켜 버린다.

때문에 에코의 소설은 독특한 재미를 선사한다. 그가 가진 모든 지식과 역량을 동원해서 엉터리를 창조해내는 과정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반전 아닌 곳에서 반전이 될 수 있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접점을 찾아내기도 한다. 때로는 에코의 지식을 따라가기 위해서 너무 깊게 생각하다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뒤통수를 맡기도 한다.(푸코의 진자에서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했던 숫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 여러분들은 어떻게 추리했나요?) 오직 움베르토 에코만이 할 수 있는 지(知)적유희다. 소설이 주는 재미는 물론이고, 움베르토 에코 특유의 지적유희가 더해져 읽는 재미가 배가된다. 정보의 홍수를 헤엄치기는커녕 에코라는 지식의 홍수에 휘말려 빠져버릴 것 같은데도 어느 새 독자들은 그러한 것을 즐기게 되는 것이다.

거의 50세에 가까운 늦은 나이에 뒤늦게 소설을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단순히 소설가로서의 경력은 짧을지 모르겠지만 늦게 데뷔했기 때문에 수십 년에 걸쳐 축적 된 지식들이 소설을 통해 압축되고 폭발할 수 있었다.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여유롭게 한 발짝 물러서 바라볼 수 있는 나이에 소설을 쓰면서 원숙한 안정감마저 느껴진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신인작가 특유의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소설이 아니라 마치 연륜 있는 작가가 자연스럽게 펼쳐내는 재미있는 소설이 될 수 있었다. 소설가로 데뷔하자마자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이미 오랜 세월 동안 꾸준히 이루어진 지적탐구가 뒷받침되어 있었고 때문이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완성된 에코월드는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독자들을 괴롭히는 정보의 나열에 그치지 않았다. 진실에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에 접근하기 위해서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한 놀이가 될 수 있었고 독자들 역시 함께 놀 수 있는 에코와 함께 하는 공간이 될 수 있었다. 한번 뱉기 시작하면 감당이 되지 않는 장황설은 최고의 지적유희로 즐거움을 더해주며 소설을 읽는 재미 이상의 것을 전해 줄 수 있었다.

그가 발표한 저서는 많지만 소설로 한정하였을 때 그 수는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소설가 움베르토 에코’가 가지고 있는 네임밸류는 놀라울 정도다. 그의 소설 자체가 지닌 이야기의 힘, 텍스트 속에 담겨진 수많은 지식들의 집합은 결론적으로 학자로서의 에코의 신뢰감을 그의 소설에 대한 신뢰감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그것도 엉터리를 향해 달려가는 소설, 아니 소설이기에 엉터리를 향해 가는 지적유희의 완성을 이룰 수 있었다.

그의 작품들을 읽다보면 정말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에코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거짓말쟁이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