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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붓다 by TEZUKA Osamu

sungjin 2012. 1. 17. 16:51

©TEZUKA PRODUCTION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은 읽으면서 누구나 공통되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작가적 역량에 감탄하게 되고 작품의 주제와 깊이에 빠져든다. 때로는 기대 이하의 작품을 접할 때도 있지만 수없이 감동시켰던 테즈카의 수많은 작품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단점마저 상쇄되어 작품에 대한 장점만이 남아 버리고 만다.

때문에 "만일 테즈카 오사무 Best를 정하라고 이야기 한다면 과연 어떨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과연 나는 테즈카 오사무의 Best를 자신있게 정할 수 있을까? 역시 마스코트인 ‘아톰’일까? 아니지 테즈카 오사무 평생의 Life Work였던 “불새” 시리즈야 말로 테즈카 최고이자 최후의 걸작이지... 하지만 테즈카의 베스트셀러는 ‘블랙잭’이기도 하잖아? ‘메트로 폴리스’, ‘넥스트 월드’등에서 보여주었던 통찰력이 돋보이는 초기 테즈카의 세계를 관통하는 작품은 어떻고? ‘정글대제’를 빼놓으면 섭섭하지 않을까? 아마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리본의 기사’로 대표되는 테즈카의 소녀만화는 물론이고 ‘아돌프에게 고한다’에서 보여주었던 역사적 시각과 주제로 성인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남긴 적도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놓칠 수 없는 작품들이 순식간에 떠오르기 마련이다.(그러고 보니 테즈카 오사무는 단편만화의 명수이기도 했잖아! ‘대기의 끝’ 시리즈나 ‘굶주린 자의 블루스’ 같은 단편도 하나 정도는 언급해야 될 것 같은데…)

“붓다”로 하는 것은 어떨까? 불새나 블랙잭 같은 작품은 이미 소개하였으니 그 동안 늘 생각만 해오다 이번 기회를 통해 이 작품을 한번 소개해 보는 것도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다룬 테즈카 오사무의 ‘붓다’는 석가모니의 일대기를 넘어 ‘삶과 죽음’이라는 테즈카 자신의 평생의 테마가 녹아들어간 작품이기도 한다. 고대 인도를 배경으로 싯타르타의 삶의 궤적을 그려나가고 있는 이 작품은 사회 구조적인 모순에서 비롯되는 불합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동시에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욕망과 탐욕을 통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다시금 반성하게 하였고 다양한 삶의 군상 속에서 참된 의미를 일깨워 주었다. 인간과 인간, 사회와 사회, 개인과 집단이라는 다양한 계층간의 갈등을 통해 풀어내는 테즈카 오사무의 휴머니즘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에서 필연적인 테마이긴 하지만 ‘붓다’에서는 더욱 깊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불교’라는 테마가 가진 무게감은 작가의 연출을 통해 한층 더 강해졌다.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오는 메시지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마음 속으로 파고 들며 어느 새 깊고 깊은 여운을 남긴다. 처음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토끼가 보여준 자기희생의 정신을 시작으로 전편에 걸쳐 전해오는 생명과 삶의 수레바퀴가 만들어 나가는 철학과 삶에 대한 성찰은 마치 조그마한 시내물이 흘러 강이 되어 드넓은 바다로 펼쳐지듯 보는 이들의 머리 속에 작은 생각으로 남겨지는 듯 했으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한한 감동으로 마음 속 가득 채워지게 된다.

무엇보다 만화라는 매체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작가이기에 무겁고 딱딱한 테마를 다루고 있음에도 쳐짐없이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흐름을 매끄럽게 전개해 나가고 있어 한순간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 듯 독자들의 시선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실제 역사적 사실은 물론이고 새롭게 창조된 캐릭터들과 메인 스토리와 수많은 사이드 스토리가 촘촘하게 엮어지며 이야기의 구성을 탄탄하게 만들어 나갔고 수십 년의 세월을 통해 한 개인에서부터 국가간의 이야기가 방대하게 걸쳐 펼쳐지는 거대한 서사구조를 취하고 있어 작품의 스케일에 압도당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다. 아주 작은 곳에서부터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작가의 위트 넘치는 감각이 빛나고 있다. 한 순간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만드는 재기발랄함이 넘친다. 아동만화에서 출발한 작가지만 성인 독자들까지 매료시킬 수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 작가인데다가 장르의 소화력 또한 한계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붓다’에서 보여준 작가의 역량은 놀라울 정도다. 이런 주제를 가지고 이 정도의 재미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 뿐 아니라 스케일에 압도당하면서도 작품에 침몰되지 않고 테마를 녹여내며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촘촘하게 짜여진 퍼즐처럼 유기적인 구성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의 필생의 역작 ‘불새 시리즈’가 다양한 테마와 소재로 실험성 가득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붓다’는 제한된 소재와 영역 안에서 ‘불새 시리즈’에 못지 않은 걸작으로 탄생시켰던 것이다.

재미와 감동이라는 단어는 어찌 보면 작품을 평가하는데 있어서는 굉장히 식상할 정도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두 단어만큼 보편성을 가지고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단어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붓다’ 역시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부족하다는 느낌마저 드는 작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