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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아돌프에게 고한다

sungjin 2009. 10. 21. 00:03

©Tetsuka Productions/ScienceBooks

“정의”라는 이름으로 얼룩진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반복되는 인간의 어리석은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광기로 뭉쳐진 정의라는 의미의 본질을 탐구해 나가는 ‘아돌프에게 고한다’는 테즈카 오사무가 평생에 걸쳐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외쳤던 반전의 메시지를 시대의 흐름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내었다. 75년 소년킹에 발표되었던 ‘배고픈 자들의 블루스’를 비롯하여 ‘종이요새’(74년 소년킹 발표)와 ‘대부의 아들’(73년 별책소년점프 발표) 등의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반전의 메세지가 돋보였던 세미다큐멘터리 성격을 지닌 이 작품은 ‘역사’라는 무게가 가진 깊이에 특유의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하며 작가의 메시지를 보다 강하고 진실되게 다가오게 만들었다. 히틀러의 출생의 비밀을 지극히 만화적 상상력에서 가정하고 출발한 이 작품은 “아돌프”라는 이름을 가진 세 사람의 운명이 2차대전이라는 시대의 중심에서 그 시대의 모습을 투영시켜 사실감을 더해주면서도 이야기가 가지는 재미라는 본질적인 만화의 즐거움을 잊지 않고 풀어나갔다.

역사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화가 가진 최고의 미덕 중 하나인 ‘엉터리’의 힘을 통해 세 사람의 아돌프의 운명이 엮어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간다. 알 수 없는 미스터리와 흥미진진한 서스펜스로 독자들을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끌어들인다. 한번 작품을 읽기 시작하면 손을 떼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재미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도 재미에 휩쓸려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주제의식을 잃지 않고 깊이와 무게감을 유지시켜 주었다. 일본과 독일이라는 국가를 무대로, 유대인과 게르만인들의 대립과 정의라는 이름아래 철저하게 포장되고 전쟁의 광기 속으로 몰아넣을 수 밖에 없는 어리석은 인간들의 반복되는 역사를 과감하게 드러내고 날카롭게 메스를 들이대었다. 특히 작가 자신 또한 일본인이면서도 어리석은 일본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작가는 철저하게 작품의 주제의식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작품에 대한 객관적으로 통찰력 있는 시각을 보여주었다.

역사라는 사실은 분명 까다롭고 손대기 힘든 영역이다. 시대의 모습을 재현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지루해지기 쉬운 반면, 재미에 치중하다가 자칫 가벼움에 주제가 흐려지기 쉽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여러 관점에서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역사이지만 양쪽의 균형을 적당하게 유지시켜 나간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돌프에게 고한다’가 테즈카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