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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AO TAKAMORI/TETSUYA CHIBA/KODANSHA/서울문화사
시대가 영웅을 탄생시킨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말은 만화에서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전쟁 이후 무기력에 빠져 있던 국민들의 상처, 급속하게 성장하면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있지만 사회적 양극화와 같은 산업사회의 문제점들이 곳곳에 버려진 채 사회는 부패해지고 내일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서민들의 마음, 학생운동 속에서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청년들의 모습, 사회적 약자라는 위치에서 불합리한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의 마음 등 수많은 시대의 단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허리케인 죠(원제:내일의 죠)’라는 걸작의 등장은 필연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서민들에게 있어 눈물의 다리 밑에서 생활하는 죠의 모습은 내일의 희망으로 이어지기 위한 오늘을 살아가는 그들의 또 다른 희망의 상징이였고 삶에 활력을 넣어 줄 수 있는 존재였다. 사회적 모순에 의한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울분을 토해내듯 죠의 모습은 그들의 삶이 투영 된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일어난다, 지독한 감량고에 시달리면서도, 뼈 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으로 힘들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서 주먹을 뻗는 죠의 투지는 단순한 근성을 넘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마음을 흔드는 시대의 소리로 전해지고 있었다.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죠의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비록 한순간일지언정 모든 것을 태워버리고 새하얀 재만 남게 되길 바란 죠의 모습은 또 하나의 삶의 바램이였을지도 모른다. 고아로 태어나서 누구보다 고독한 생활을 했던 그가 링 위에서 보여준 모든 것들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듯 환하게 미소지으며 앉아있는 마지막 모습은 단카이 세대들에게 또 다른 삶의 의미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동시에 내일의 죠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걸작으로 그치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전해주었다. 시대의 단면들이 투영 된 이 작품에서 보여지고 있는 모습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지난날의 향수가 함께하며 또 다른 소중한 모습들을 간직할 수 있었다. 마치 야생마와도 같은 죠의 모습은 물론이고 거리의 모습,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소중한 무언가를 다시금 생각나게 해 주었다. 아주 작은 일에도 함께 웃고 울어줄 수 있는 마을 사람들, 언제나 따스한 마음으로 감싸주는 모습을 보며 어느 사이엔가 가슴 한구석을 찡하게 만드는 정이 넘치는 사회가 전해주는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온다. 과거를 살았던 어른들은 물론이고 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을 경험하지 않은 현재의 우리들에게도 변함없는 모습으로 말이다. 내일의 죠에 등장하는 눈물의 다리를 건넌 사람들의 이야기는 가장 보편적인 이웃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 우리들의 후손들이 봐도 여전히 생생하게 숨을 쉬는 시대의 공기를 공유할 수 있는 절대적인 감동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뼈를 깎는 감량의 고통, 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 등 권투라는 스포츠의 묘미를 한껏 살려 전해주는 스포츠 만화로써의 재미는 죠라는 캐릭터를 통해서 권투의 재미와 함께 삶의 또 다른 모습, 민중의 바램이라는 형태로 중첩되어 간다. 상대의 힘을 그대로 받아 넘쳐 쓰러뜨리는 필살의 크로스 카운터는 그 때문에 더욱 통쾌하게 다가온다. 처절한 링 위의 사투는 치바 테츠야의 손에 의해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훌륭하게 연출되었고, 어둡고 피폐한 분위기는 놀라울 정도로 실감나게 표현되어 작품의 완성도를 극대화 시켰다. 작품 속에서 보여주었던 것들이 세월 속에서 바래지 않도록, 죠의 불꽃같은 삶의 의미가 꺼지지 않도록 작가 역시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이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이다.
거장과 거장의 만남, 그리고 시대의 바램은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을 탄생시켰고,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영웅을 만들어 내었다. 잊혀지지 않을 명장면을 보여주었고, 가슴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끼게 하였다. ‘과연 앞으로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누구라도 ‘아니요.’라고 답할 정도로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작품을 꼽는다면 이 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죠와 같은 주인공, 눈물의 다리와 같은 삶의 모습,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을지 몰라도 이미 지나가버린 시대의 모습을 그 시대의 공기를 공유하면서 담아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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