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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러라는 장르에 대해서 본인은 확실하게 정의 내릴 수 없다. 분명 인간의 무의식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그런 것 또한 공포이지만, 비현실적인 존재-즉 영적인 괴물이나 영체 같은-들이 등장하는 이야기 또한 호러물인 거다. 때문에 여기서 이야기하는 호러 장르는 "공포, 전율"이라는 단어에 기준을 두고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즉, 어떠한 소재를 취하고 어떠한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장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서 얼마나 독자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하는가에 보다 기준을 두고 이야기하고 싶다.

일본의 공포물에서 특히 주목할만한 건 귀신이나 유령 같은 초자연적인 소재 대신 보다 실제적인 것에 소재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아마도 그것은 일본인들이 원폭이나 자연 재해(주1) 등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인 모든 재앙을 이겨내며 살아왔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중 대표적인 몇 작품을 소개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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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곤 헤드
- 이런 실제적인 소재를 사용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모치츠키 미네타로의 "드래곤 헤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주내용을 보면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기차가 터널 속에서 사고를 당한다. 생존자는 테루와 세토, 노부오. 한치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보이는 참혹한 광경들을 뚫고 천신 만고 끝에 터널에서 빠져나오니 세상의 모습은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너무나 달라져 있었다.

순식간에 닥쳐온 대재앙과 그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작가는 연재를 시작하던 때의 세기말적인 묵시록적 이미지와 함께 어둠이라는 것에 대해서 인간들이 가지는 심리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왜 하필 내가 타고 있는 기차가, 그것도 수학 여행 중에 이러한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일까? 과연 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된 것일까? 사고를 당한 것은 내가 아니라 인류였던 것일까? 갈수록 더해지는 의문 속에서 이야기는 독자들을 작품 속 인물들과 같은 공포 속으로 이끌어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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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 드래곤 헤드가 어느 날 갑자기 닥쳐오게 되는 재앙과 주위로부터의 단절과 완전한 어둠으로부터 오는 공포에 대해서 독자들을 전율시키고 있다면,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는 인간이라는 존재에 접근하며 진정한 공포란 무엇인가를 말해주고 있는 작품이다. 방대한 스케일과 설정 속에서 치밀한 심리극을 그려내고 있는 몬스터. 살인자의 누명을 쓴 채 자신이 살려낸 몬스터 요한을 쫓는 덴마가 보여주는 휴머니즘은 호러물로써의 공포감과 동시에 우라사와 특유의 인간미를 잃지 않는 작품이다. 긴박하게 진행되는 스토리 속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인간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적인 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극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동시에 우라사와의 휴머니즘, 해결될 듯 해결될 듯 하면서도 마지막까지 사건을 미궁으로 몰아가는 미스테리가 균형을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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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
- 이와아키 히토시의 기생수 역시 인간이라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다. 만화의 시작부분에 "지구의 사는 누군가가 문득 생각했다. 인간이 100분의 일로 준다면 쏟아내는 독도 100분의 1이 될까. 누군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생물의 미래를 지켜야 한다."라는 글이 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기생수들은 인간의 머리를 먹어치워 몸을 조정하며 살아가는,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들이다. 인간인 우리의 시각으로 보면 인류의 적인 이들을 통해 작가는 현대 문명에 대해 경종을 울리면서 인간이야말로 지구를 좀먹는 "기생수"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을 잡아먹으면서도 인간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기생수. 이 기생수라는 기묘한 생명체를 통해서 벌어지는 살육은 단지 단편적인 공포만을 주는 것이 아니다. 물론 기생수에 의해 살육되는 인간들의 모습은 잔인한 게 분명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되어갈수록 드러나는 인간들의 이기심은 순수한 생존을 목표로 하는 기생수들보다 더 추악해보이기도 한다.

작품 속에서 기생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일부 관계자들과 작품을 보고 있는 독자들뿐이다. 기생수들이 벌이는 살육도 그저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과 별다를 바 없다. 누군가 사라지더라도 그것은 일상일 뿐 기생수의 존재를 모르는 이들에겐 그저 대수롭지 않은 사회의 일상일 뿐이었다. 우리는 기생수를 악의 존재라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단지 살기 위해 인간을 먹어가는 그들과 생존과 관계없이 서로를 죽이는 인간 중 잘못된 것은 누구?

이 작품에서 진정으로 독자들을 전율시키는 것은 바로 인간의 이기심과 오만함이다. 극적인 공포감은 덜할지 몰라도 인간의 존재 자체에 대한 주제를 통해 강렬한 인상을 찍어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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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작카인 시리즈
- 반면 유키 카오리의 백작카인 시리즈 같은 경우에는 일종의 사이코 스릴러라고 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접근하고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사이코 서스펜스물로써 최고의 재미와 연출을 보여주는 작품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하는 작품으로 공포스러운 분위기와 미스테릭하고 치밀한 스토리 전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반전은 보는 이들을 단숨에 카오리 유키의 팬으로 만들어 버린다. 신인이었을 때 그렸던 작품이라 조금은 미숙하고 뭐가 부족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특유의 섬뜩한 그림체와 공포스러운 분위기, 의문점이 가득한 미스테릭한 사건들 속에서 보여지는 긴장감은 상당한 편이다. 드레곤 헤드만큼의 압도적인 세계나 몬스터나 기생수에서 보여주는 주제의 무게감도 약할지 모르지만 스릴이나 미스테리 등등 여러 가지 재미가 적절하게 밸런스를 이루고 있는 작품이다.


이처럼 공포라는 장르는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다양한 장르와 결합하여 표현되고 있다.

더 이상 귀신 이야기만으로는 독자들을 매료시키기 힘들었는지 아니면 독자들이 갈수록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면서였는지, 시대의 흐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공포 만화에서 다루어지는 소재들은 우리가 두려워하고 감추어 두었던 어둠의 단편들이다.

과거의 세계에서는 사람들의 사회가 단순했던 만큼 그 두려움의 대상도 영적인 존재나 자연 재해 등에 한정되어 있었다. 어릴 적 들었던 민담 속의 괴물들이나 귀신들, 사후의 세계가 그들이 두려워하고 있던 주대상이었던 거다.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했던 만큼 이들에게 자연이 내리는 재앙이야말로 가장 큰 공포였다.

그러나 이제 자연보다 인간에게 더욱 살가운 것은 기계적인 사회이다. 같은 사회를 이루고 있는 인간이야말로 스스로를 공포로 밀어 넣는 가장 큰 대상이 되었다. 인간이 인간을 짓밟고, 자연마저도 인간의 손에 의해 붕괴되어 버린다. 아무렇지 않은 집단이란 이기심이 한 개인을 무참할 정도로 파괴시키고, 재앙이란 자연보다 인위적인 것에 의해 만들어지기 쉬워졌다. 공포가 인간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는 거라면, 이것은 어쩌면 우리 스스로에게 내리는 경고일지도.

세기말과 종말, 재앙, 이제 이 공포의 끝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지. 우리는 다양한 작품을 접하게 된다는 즐거움과 함께 스스로가 만들어 낸 어둠을 쓴웃음을 지으며 지켜봐야 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주1)대재앙이라는 것은 일본인들에게는 무의식중에 상당히 자리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록 만화이긴 하지만 드레곤 헤드 같은 작품말고도 고르고13으로 유명한 사이토 타카오의 "일본 대 침몰"이라든가 오토모 카츠히로의 "아키라",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등 일본에는 이러한 대재앙을 소재로 굉장히 디스토피아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들은 그 수는 적지만 굉장한 주목을 받아오고 있다.

2003.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