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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설국열차

sungjin 2012. 10. 1. 18:40



“대재앙 이후의 세계”라는 소재가 더 이상 독자들에게 독특하게 받아들여지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이미 수많은 작품들을 통해 단골 메뉴가 되어 버린 소재이기도 하지만 미디어의 홍수와 끊임없는 소재 싸움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이야기가 펼쳐졌다.’라고 평가 될 정도로 소재나 주제만으로는 더 이상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대재앙’이라는 소재는 계속해서 수많은 작가들에 의해 새로운 형태로 다가오게 된다. 어디서 본듯한 데자뷰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여전히 독자들을 매료시킬 수 밖에 없는 강력한 끌림을 지닌 이야기, 여전히 의문점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해답을 알 수 없는 미지의 수수께끼 가득한 궁금증투성이로 채워진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희망’이든 ‘절망’이든 우리들에게 있어서 무한한 동경을 가지게 하는가 하면 때로는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서움을 경험시켜 주기도 한다.

“설국열차”의 이야기는 그런 점에서 ‘대재앙’이라는 소재를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이기도 하지만 독특한 느낌을 통해 독자들에게 한층 더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기심에 의해 촉발 된 대재앙, 무서울 정도로 계급화 된 사회의 모습 속에서 던지는 인류에 대한 경고 등 이제까지 계속해서 접해왔던 주제이고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설국열차를 통해 다시 한번 강렬한 메시지를 머리 속에 각인시키게 된다. 미래 사회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모습들을 통해 현재 사회에 대한 반성과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는 날카로운 통찰력이 돋보인다. 멸망을 향해가는 것을 알면서도 타락의 늪에서 즐길 수 있는 인류에 대한 어리석은 모습들, 모순으로 채워진 사회의 진실을 알면서도 은폐시키고 거짓으로 꾸며낸 사회의 모습들, 앞으로의 방향이 희망으로 향할 수 없음에도 절망마저 외면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묘사한다.

철저하게 폐쇄되고 고립 된 사회는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며 팽팽하게 당겨진 실 위에서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가는 듯 하다. 영하 90도의 극한의 추위, 온 세상이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죽음의 세계 속에서 유일하게 생존할 수 밖에 없는 열차 위에서 형성된 사회는 열차의 칸마다 계급이 형성되고 차별이 더해지게 된다. 어떠한 희망의 메시지도 보여주지 못한 채 설국열차는 멈추지 않고 종말을 향해 전진해 나가며 서서히 멸망의 종착역을 달려간다.

순백의 하얀 세상으로 꾸며진 작품의 배경은 아름다움 설원 속에서도 죽음의 이미지를 채워넣었다. 멈추지 않고 달려가는 열차의 모습은 결국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다가올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다. 극도로 제한 된 열차 안의 세상 속에서 작가는 대재앙 이후의 모습을 압축시켜 하나씩 펼쳐놓았다. 그리고 진행형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의 마지막을 통해 설국열차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달리게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