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파운드의 복음을 읽으면서 잔잔한 감동을 느끼고 감상하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는다면 권투선수로서 필수적인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감량에 실패하는 주인공과 주인공이 한눈에 반해버린 수녀님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주인공이 매번 상대하는 상대선수들의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은 포기해도 복싱을 좋아하는 것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다. 누군가는 새로 태어날 아이의 아빠이고, 누군가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있다 주인공의 럭키 펀치에 KO패를 당하는가 하면, 여전히 권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현재의 생활 속에서 틈틈히 권투에 매진하는 사람들도 있다. 권투에 재능이 없지만 좋아한다는 마음만으로도 링 위에 서는가 하면, 나약한 자신을 변화시키기 ..
“전년도 4승에 그쳤던 리치몬드 농구팀은 카터 코치의 부임 이후 뿌리 깊은 패배의식을 떨쳐내고 준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한다!” 코치 카터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다는 점, 그리고 실제 리더 한사람의 등장과 변화를 통해 큰 성과를 달성했기 때문에 여러 매체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작품의 본질을 망각한 채 표면적인 내용만은 가지고 작품에 대한 해석을 엉뚱하게 하면서 작품이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아니 어쩌면 전혀 반대로 전달되는 경우가 보이곤 한다. 코치 카터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리더가 어떻게 조직을 변화시켰는가?가 아니라 리더가 어떻게 조직의 구성원들을 변화시켰는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조직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조직원의 가치를..
흰색, 푸른색, 붉은색, 녹색, 검은색… 사랑이라는 감정, 희생이라는 아픔, 시기에 물들어 있는 질투, 회상, 그리고 힘이라는 시대의 상징… 장이모 감독의 ‘영웅’은 영상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미장센의 잠재적 가치를 극한까지 펼쳐내었다. 가지각색의 색채가 자아내는 이미지를 화면 가득 물들이고 한치의 예외도 없이 명확하게 설정하였다. 검은색으로 출발하는 화려한 액션은 맹인악사의 현이 만들어 내는 울음소리와 함께 강렬한 이미지로 보는 이들의 시선을 강타하지만 영화를 보는 순간 이내 곧 색채로 물든 이미지 속에 액션의 영상미학마저도 빨려들어가 버리고 만다. 고요한 호수 위에서 펼쳐지는 푸른색의 고요함이 만들어 내는 산수화 같은 풍경은 마치 영상의 미학을 전달하기 보다는 한폭 한폭의 그림 같은 정적인 순간의 영..
"내가 죽으면 과연 가족이 나를 위해 울어줄까? 우는걸까?" 우연히 소유하게 된 강대한 힘, 세상을 구할 수도 멸망시킬 수도 있는 힘을 지닌 두 사람의 대립되는 행보를 통해 바라보는 ‘인간성에 대한 의미’의 탐구,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무서울 정도로 사람의 존엄성을 난도질하는 네티즌, 집단의 폭력과 개인의 폭력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오쿠 히로야의 이누야시키는 SF에서 흔하디 흔한 클리셰로 뭉쳐진 작품이다. 이야기의 모티브나 주제, 캐릭터에 이르기까지 이제까지 SF를 통해서 꾸준히 감상했고 끊임 없이 고민하고 탐구하던 테마들이 작품 곳곳에 펼쳐진다. 인류사회의 고도화가 진행되면서 자연스럽게 파생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문제들을 담고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고독한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나의 깃발 아래서, 나의 깃발 아래서 나는 자유롭게 살아간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시켜서 하록을 탄생시켰다. 이야기의 힘이 아니라 캐릭터의 힘을 믿고 작가 특유의 감성을 추구하는 이상적인 캐릭터를 구현하고 우주해적 캡틴 하록이라는 작품을 완성하였다. 오래 전부터 다양한 작품에서 적용되어오던 해적의 이미지가 풍기는 클리셰를 고스란히 이어받으면서도 세월의 흐름에서 변하지 않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지닌 ‘하록’이라는 만화 역사상 손꼽히는 주인공을 통해서 말이다. 망토와 애꾸눈, 훤칠한 체격, 깊은 사연을 마음 속 깊숙히 간직한 채 유랑하는 생활을 하는 해적선의 선장은 그 어떤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인 강인한 정신력을 지니고 있었다. 모두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비탈리 콘스탄티노프는 한권의 책 속에 도스토예프스키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담아내었다. 여기저기 잘라서 붙이고 새롭게 탄생시키는 콜라쥬 기법을 통해 작가는 복잡하고 다층적으로 얽혀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삶과 작품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지는 파노라마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인격적으로 불안정할 수 밖에 없었던 대문호의 굴곡진 삶의 여정들과 쉴새 없이 폭풍이 휘몰아 칠 수 밖에 없었던 대문호의 작품들이 지면 위에서 글과 그림으로 파편화되기 시작한다. 치열하게 전개되는 그의 작품과 그의 삶만큼 단행본 안에서도 치열하게 배치되고 나열되고 복합적인 의미를 중첩시켜 나간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매체의 특성을 살려 특유의 그림의 힘과 글의 힘 그리고 두 가지를 조합하면서 완성할 때 나오는 시너지가 더해지면서 도스토옙스키..
작품의 내적인 부분이나 외적인 부분에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는 작가의 작품이지만 여전히 단행본이 발매될 때마다 가장 먼저 달려가서 책장을 넘기게 된다. 단순히 ‘재미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실제로 재미있다는 사실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할 정도로 헌터X헌터를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은 만화라는 매체가 지닌 장점과 상상력 넘치는 이야기의 매력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새로운 단행본이 나오면 자연스럽게 이전 단행본을 다시 한번 읽게 된다. 다시 한번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을 확인하면서도 지루함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임에도 여전히 새로운 재미가 있고 반복해서 즐기는 재미가 살아 있다. 잦은 휴재와 무성의한 콘티 연재, 잦은 오마쥬(심할 때는 트레이싱) 등으로 비난받기도..
모노가타리 시리즈는 니시오 이신이 작품을 통해 보여줄 수 있는 것들, 작가가 시도하고 있었던 것들이 모두 담겨 있었지만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세계관의 모순이 하나씩 생겨버리고 지나칠 정도로 작가의 클리셰가 반복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작품이 정체되기 시작하였다. 초기에 보여주었던 다양한 실험적인 연출들과 이야기의 구성이 언제부터인가 반복되는 변주곡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고 결국 여타의 작품들처럼 시리즈가 길어지면서 작품의 세계관이 튼튼해지기 보다는 허술해지면서 이야기시리즈는 니시오 이신의 대표작은 맞지만 최고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힘든 상황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미 작품을 통해 완성된 캐릭터적인 매력은 더 이상 확장하기 힘들었을 테고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서도 결말을 기대하기에는 많은 것들이 소모되었다. 시리즈..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을 읽으면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소설의 세계를 바라보게 된다. 소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작가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기묘할 정도로 나보코프의 장난질에 넘어가게 되고 알 수 없는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산문이라고 생각했던 작품은 주석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주석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산문시의 저자와 주석의 저자를 통해 독자들은 두사람의 관계성을 주목하면서 주석을 하나하나 읽어나간다.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주석을 통해서 펼쳐지기 시작한다. 젬블라라는 어느 왕국의 국왕이 도주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와 국왕을 시해하기 위해 또 다른 여정을 떠나는 그라두스의 이야기가 작품 속에서 동시대적으로 일치되고 겹쳐지면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작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코노 후미요 원작의 ‘이 세상의 한구석에’라는 작품을 마주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손이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딘가 마음 한구석을 울릴 수 밖에 없는 표지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이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따스한 이미지로 그려진 그림을 보면서 가슴 한구석을 묵직하게 차지하는 무거움이 함께 느껴진다. 페이지 곳곳에서 펼쳐지는 붓터치와 펜터치는 작가의 실험적인 시도를 통해 신선하게 다가오면서도 그 시절의 거칠고 투박한 이미지를 매끄럽고 깔끔하게 표현한다. 그리움 속으로 안내하는 듯한 분위기가 웬지 지금 이순간을 함께 하는 듯한 동시대적인 감각으로 다가온다.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부분, 미쳐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는 장면들 등 아주 작은 부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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