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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혼 17권

sungjin 2007. 9. 25.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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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deaki Sorachi/SHUEISHA/학산문화사

사무라이는 천인들이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사라져 버릴 구시대의 유물이라고 합니다. 한 때 천인들에 맞서 싸운 영웅이였으나 세상이 바뀐 지금은 반란의 싹으로 치부되어 정부에 감시를 받는 신세가 되었죠.

은혼 17권에서 펼쳐지는 긴토키 일행들의 모습을 보면 언젠가 멸망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사무라이들이라도 그들의 영혼만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것도 영혼을 곧게 세운 채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서서 말입니다. 사무라이는 사라지더라도 그들의 정신은 다른 누군가에 의해 계속해서 계승되어 의지를 이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있습니다.

다시는 눈앞에서 소중한 것들을 지키지 못한 채 허망하게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던 긴토키의 혼은 어느 덧 신파치에게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하고 살아 남아도 사무라이에게 있어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라고 외치며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모습은 은혼 1권 1화에서 신파치의 아버지가 죽으면서 남겼던 말, 그리고 신파치가 긴토키를 따라다녀야만 했던 이유를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은혼 17권에서는 다시 한번 은혼이라는 작품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폭소가 터지는 와중에서도, 엽기적인 웃음과 패러디가 판을 치는 가운데서도 초기 시절 은혼에서 은연중에 강조되던 테마를 잊지 않고 독자들에게 전해 주며 찡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새로운 세상에 어울리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운명을 지닌 사무라이와 다른 누군가에게 의해 이어지는 의지로 표현되는 사무라이의 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딸을 위해 사랑의 대상으로 만들게 된 로봇과 그것을 만든 아버지의 이야기가 펼쳐지기 시작합니다.

소중한 딸을 위해, 그리고 자신을 위해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하고 삐뚤어가는 아버지의 애정, 딸의 인격 데이터를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조금씩 인간의 감정을 쌓아가는 과정은 로봇을 주제로 하는 여타의 작품에서도 흔히 접할 수 있는 진부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은혼에서는 진부한 이야기도 가슴 한구석을 뭉클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기상천외한 센스와 황당함으로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이처럼 가슴 한 켠을 적실 수 있는 이야기를 전해줄 때 더욱 은혼이라는 작품이 좋아지게 됩니다. 배꼽을 잡을 정도로 웃는 와중에서 마음을 적셔주는 감동은 은혼이 아닌 다른 작품에서는 느끼기 힘든 매력이 있습니다. 대사 하나하나, 각 에피소드의 타이틀 하나하나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타고난 센스는 여전합니다. 무언가 나사 하나 빠진듯 살아가고 있지만 결정적일 때에 멋지게 활약하는 긴토키의 모습은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있습니다. 웃음이 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가장 상투적인 이유이긴 하지만 이래서 은혼을 좋아할 수 밖에 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