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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20면상에게 부탁해 by 클램프

sungjin 2007. 9. 24.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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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아키라는 클램프 학원의 초등학교 4학년이다. 아버지 없이(물론 살아 계심, 왜 같이 살지 않는 지는 의문) 아름다운 두 엄마와 함께 사는(왜 엄마가 둘인지는 역시 의문) 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신세다.(뭐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게다가 무지하게 철없는 엄마들의 요청에 따라 가끔 부업(?)으로 괴도 20면상을 겸하고 있다. 그의 정체를 모르는 옆집 형 고바야시의 맹추격을 받지만 언제나 유유자적하게 도망치고 만다.

일반적인 평가에 비해 개인적으로 월등히 높게 평가하는 작품이 있다면 내게 있어서는 바로 이 작품이다. 신인다운 열정은 넘치지만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았던 시절 발표하였던 작품, 그것도 그들의 주특기가 아닌 다소 외도성(?)을 띄고 있는 소프트 개그물이라는 점에서 분명 다른 비슷한 장르의 인기작들과 비교한다면 함량이 부족해 보인다. 아니 클램프가 그동안 발표해왔던 작품과 비교해도 이 작품의 위치는 높은 곳에 올라서기 힘들 것이다. 심지어 비슷한 시기에 발표하였던 ‘성전’이나 ‘도쿄 바빌론’과 비교해봐도 이 작품이 뛰어나다고 이야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작품에 가장 애정을 보낼 수 있고, 지금도 이 작품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이다. 혹시나 해서 다시 이 작품을 감상해도 여전히 재미와 감동은 변함 없다.

이미 여타의 작품에서 보아오던 괴도물의 설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범행 시각 전에 보내는 예고장, 언제나 괴도를 놓치고 마는 라이벌, 주인공과 엮이는 애정 관계, 부모님 역시 괴도였다는 가업(?), 괴도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면서 은근슬쩍 도움을 주고 있는 조력자의 존재 등 괴도물이라면 당연시 되는 것들이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뭔가 약하다. 괴도물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 카리스마 넘치는 주인공의 여유로운 범행일지, 복잡하게 얽혀있는 스토리 전개 속에서 밝혀지는 진실과 예상 못한 반전, 사건의 긴박감이나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한 긴장감이 없다. 밋밋하다. 음식으로 따진다면 맛없고, 게임으로 따진다면 심심하다.

하지만 웬지 모를 매력들이 가득 느껴진다. 적절하게 섞여 있는 로맨스와 잔잔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위트와 유머가 아기자기하게 전개되는 사건 속에서 알콩달콩한 로맨스와 함께 은근슬쩍 재미를 주고 있다. 클램프식 네이밍 센스와 까메오 연출, 4컷만화와 일러스트 에세이 등 다양한 잔재미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생과 유치원생의 사랑이야기가 비현실적인 내용이지만 웬지 모르게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탁월한 연출이나 실험적인 연출도 없고, 긴장감도 없다. 특별히 감동적으로 전개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즐겁게 책장을 넘기고 있다. 아기자기한 전개 속에서 펼쳐지는 로맨스와 굴곡 없이 전개되는 밋밋한 이야기는 웬지 모를 잔잔함을 느끼게 한다. 무엇하나 현실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주인공 아키라의 우타코의 이야기는 귀여움이 담겨 있어 살며시 미소 짓게 된다.

클램프식 소프트 개그물의 패턴을 구축해 내었다는 의미에서 나름대로 의의를 두는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개인적으로 너무나 아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아기자기한 꼬마들의 사랑이야기, 귀여운 로맨스, 읽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잔잔한 이미지 등이 다시 읽어도 변함없이 느껴지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