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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시리즈의 성공은 타카하시 루미코에 대한 평가를 단숨에 수직상승시켰다. 물론 그녀의 대표작 시끌별 녀석들이나 메종일각만으로도 작가에 대한 평가는 최상위에 위치시킬 수 있지만 인어시리즈의 성공은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가적 역량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며 그녀의 천재성을 각인시킬 수 있었다.

루믹월드라고 부르는 그녀의 작품 세계는 러브 코메디 중심의 장편 연재작을 중심으로 일상의 소소함을 담아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잔잔함 여운을 전해주는 루미코 극장, 그리고 데뷔 초기발표하였던 다채로운 단편들이 어우러지면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었다. 코믹, 호러, SF, 드라마, 일상에서 환상을 넘나드는 다채로움은 월드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였고 동시에 그녀의 작가적 재능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이정도로 방대한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까지 그녀의 왕성한 작품 활동에 대한 것이다. 살인적인 주간 연재 스켸쥴을 소화하면서도 매년 잊지 않고 발표한 타카하시 루미고 극장은 물론이고 부정기 연재를 통해 시간이 걸리기 했지만 깔끔한 마무리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1파운드의 복음 등 데뷔 이후 발표한 루미코의 작품들은 단순히 양적인 풍부함과 함께 내용적인 풍성함으로 그녀의 재능과 함께 작가적인 책임감과 성실함을 엿볼 수 있었던 것이다.

시끌별 녀석들이 로맨틱 코메디 또는 러브 코메디의 매력을 살린 특유의 좌충우돌 난잡함 속에서 루미코의 손을 통해 탄생된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함께 작품 전편에 걸쳐 유쾌함이 함께 할 수 있었다면, 메종일각은 한층 더 성숙해진 러브 로맨스의 비중을 높이고 오해와 엇갈림 속에서 생겨나는 드라마의 매력을 극대화화면서 소년지는 물론 청년지에서도 대성공한 여성 작가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단순히 작품의 성공만이 아니라 그녀가 보여준 캐릭터 메이킹이나 설정, 관계도는 이후 수많은 작품들에 영향을 미쳤고 일본의 80년대 만화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매김 하게 된다. 또한 파이어트리퍼, 잊고서 잠들라, 1orW 등 살인적인 주간 연재 틈틈히 연재한 그녀의 단편들은 다채로운소재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루믹월드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그녀의 작품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주게 되었다. 작품에 대한 신뢰와 함께 작가적 성실함에 대해서도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그녀를 열광적으로 지지하는 팬층을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어시리즈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이였다. 러브 코메디 중심의 작품 활동을 하던 루미코가 발표한 호러만화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키나와에 서식한다는 일본의 전설을 바탕으로 작가 특유의 만화적 설정이 추가되면서 놀라울 정도로 섬뜩한 인어 전설을 완성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여과없이 펼쳐내면서 영원한 생명을 둘러싼 욕망과 덧없음을 담아낸 인어 시리즈는 여타의 공포만화와 비교한다면 표현의 수위나 그로테스크함을 비교하자면 부족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작품 속에서 연출되는 기묘한 분위기와 설정, 그리고 처절함은 걸작 공포만화에 평가하기에 손색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과적으로 인어 시리즈의 성공은 그녀의 작가적 재능이나 스펙트럼을 넘어 타카하시 루미코의 작품 중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자리 매김 하게 된다.

인어 시리즈의 존재는 MAO(마오)라는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소년 선데이에서도 작품의 연재에 앞서 인어 시리즈를 언급했을 정도로 마오라는 작품은 이전 작품들에 비해 다소 무겁고 시리어스하며 본격적인 주술과 요괴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라고 예상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누야샤 역시 전국시대를 배경으로 다양한 요괴와 주술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소년지 특유의 성장과 필살기, 그리고 모험활극을 중심으로 타카하시 루미코 특유의 러브 코메디의 색깔을 잃지 않았던 작품이였고, 후속으로 연재된 경계의 린네 역시 영적인 존재와 주술에 대한 설정을 바탕으로 전개되지만 특유의 난잡한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러브 코메디 중심으로 펼쳐지는 전형적인 루미코식 Boy meets Girl이였다. 하지만 마오는 작품의 분위기가 한 층 무거워지고 본격적으로 주술적 기이함과 그로테스크한 요괴의 이미지가 작품 속에 스며들기 시작한다. 완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이전 작과 비교하였을 때 러브 코메디의 비중 자체가 줄어들고 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전개하였다. 캐릭터의 구성과 설정, 타임 슬립이라는 소재와 이야기의 구성 등 여전히 자기복제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그건 이누야샤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기 연재 당시 엘프를 사냥하는 자들이나 드래곤볼에 대한 비교까지 나왔을 정도였으니…) 분명 MAO라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끼게 되는 감정들은 이전의 루미코의 작품들과는 다소 생소할 수 밖에 없는 새로운 루믹월드의 느낌이 있었다.

분명 마오는 루미코의 연재작 중에서 성적이 좋은 편은 아니다. 우루세이 야츠라나 란마, 메종일각 등이 시대를 대표하는 히트작인 탓도 있지만 고령으로 접어들면서 전성기가 지나버린 작가, 1980년대가 아닌 2020년라는 시대의 흐름에 바뀌어버린 만화계 등 작품 내외적으로 판매량, 미디어 믹스 등에서 완만히 하락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는 이누야샤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판매량이나 미디어 믹스에서 여전히 전성기였지만 경계의 린네를 기점으로 루믹월드 역시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었던 사실을 생각하더라도 마오의 상업적인 성과는 다소 아쉬울 따름이다.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연재 중인 현재 시점에서 결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루믹월드의 상단에 위치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미 데뷔작을 통해 일본 만화 역사상 손꼽히는 걸작 러브 코메디를 탄생시켜 버렸고 빅코믹 스피리츠에 메종일각은 미디어에 따라 만화사 전체를 통틀에서 TOP3까지 평가받는 걸작이였다. 앞서 이야기하였던 인어 시리즈 역시 루미코를 천재작가로 재확인시켰을 정도로 호러물의 걸작이였으니 마오의 평가는 결과적으로 인어 시리즈와 비교당하면서 러브 코메디의 장점을 잃어버린 루믹월드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마오라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아쉬움 보다는 즐거움이 더 크게 다가온다. 본격 러브 코메디에서 이미 모든 즐거움을 전해주었던 루믹월드가 새로운 다이쇼 시대의 요괴월드로 안내하면서 또 다른 즐거움을 전해 줄 수 있었다. 티격태격 사랑의 줄다리기가 약해졌지만 여전히 소년과 소녀의 만남은 유효하고(마오의 나이가 너무 많기 하지만…) 타입슬립이라는 상투적인 설정마저도 루믹월드이기 때문에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만든다. 스토리에 힘이 실리면서 수수께끼처럼 흩어진 퍼즐의 조각들이 하나씩 회수되기 시작하고 이야기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조금식 작품에 대한 흥미가 올라간다. 이누야샤의 색채가 조금식 옅어지고 인어 시리즈와는 또 다른 방향으로 작품을 만들어 간다. 루믹월드의 대표작과 비교할 때 확실하게 재미있어요!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여전히 변함 없는 루믹월드의 매력은 여전하다는 것이다.

경계의 린네가 다소 아쉬운 모습이라도 역시! 타카하시 루미코!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유가 루믹월드의 Boy meets Girl의 마법과 오해와 엇갈림이 만들어 내는 좌충우돌 사랑의 줄다리기가 유효했기 때문이라면 마오는 또 하나의 루믹월드!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였다. 전작에 대한비교가 아니라 다시 한번 즐기는 타카하시 루미코의 신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