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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V.(브이.)

sungjin 2021. 12. 13. 09:06

삶의 대부분을 V.를 찾는데 할애할 수 밖에 없었던 허버트 스탠슬과 인생이 꼬여 있는 베니 프로페인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수많은 의문점에 대해 명확하게 해답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난 이후에도 여전히 페이지를 되돌리게 만들었다. 방대한 정보의 압박과 시대적인 배경들이 작품 속에 녹아들면서 작품을 감상하는 동안 지속적으로 검색활동을 자연스럽게 만들었으며 여기저기 등장인물들의 교차점을 생성하면서 한층 더 이야기를 복잡하게 엮어 버렸다.

동시에 V.의 이야기는 마지막까지 토마스 핀천의 독특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에 작품의 매력, 토마스 핀천이 만들어내는 매력에 빠져들 수 있게 하였다.

스페인의 V., 크레타섬에서의 V., 코르푸섬에서 불구가 된 V., 소아시아에서 파르티잔으로 활약하던 시절의 V. 
V.란 지금에 이르러서는 고도로 산만한 개념이 되어 있었다.
V.를 찾아내는 날에는? 그때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V.를, 무엇이라고 형용할 것인가?

작품 속 시종일관 영향력을 행사하는 V.에 대해서는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여러가지 상상을 하게 만든다. 명확하고 구체화된 존재가 아니라 모호하고 불확실한 존재를 통해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가 자아내는 신비로움이 마지막까지 생각할 수 있는 공백을 만들고 페이지를 덮고 난 이후 공백을 채우기 위한 사고의 즐거움을 남겨 놓았다.

지금은 전혀 다른 시대입니다. 어쩌면 라듐 같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라듐은 아주 조금씩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긴 기간을 두고 납으로 변한다죠.

문학과 과학의 만남을 통해 독특한 즐거움들을 채워 놓았다. 단순히 단어를 이용한 수사법은 물론이고 문장을 이어가고, 문단을 이어가면서 과학적 현상을 문학적으로 치환하는 핀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작품을 읽고 있는 동안 곳곳에서 이 같은 즐거움을 심어 놓았다.

중요한 건 내가 본 것도 아니고 보았다고 믿은 것도 아니야. 결국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문제니까. 내가 어떤 진실에 도달했느냐가 문제라고.

국가는 물론이고 시대를 넘나들면서 상당한 배경 지식을 요구하는 작품이지만 동시에 작품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게 된다. 188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이집트의 파쇼다 사건에서부터 독일의 아프리카 점령, 이민자들의 폭동 등 반복되는 부딛힘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때로는 무섭고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한 인간사회의 모습들이 나열되면서 독자들을 묵직하게 압박한다. 프로페인과 스텐슬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것보다 V.의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보다 거대한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사기업이란 사양길에 들어선 직업이야.” “진짜 능숙한 놈들은 모두 정치판으로 들어가 버렸거든.”

V.의 존재에 대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한 여정 곳곳에 심어져 있는 유쾌함이 있기에 다채롭게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외설적이다 못해 스캇물에 가까울 정도로 지나침이 있기는 하지만 소설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묘사할 수 있는 고유의 즐거움을 잊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감상할 때에는 묵직하고 거대한, 그리고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벅찬 작품이지만 작품 속 곳곳에서는 재치가 넘친다.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과학적 이미지를 차용하는 즐거움이 있고 대화 속에서도 유머러스함이 전해진다. 곳곳에 삽입 되어 있는 노래가사를 음미하는 즐거움이 있다. 검색을 일상화시킬 정도로 방대한 정보의 양과 수많은 이야기들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와 압축성은 분명 벅찰 수 밖에 없고 마지막까지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떨어뜨릴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매력들을 즐길 수 있기에 V.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생각보다는 즐겁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