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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블리딩 엣지

sungjin 2021. 12. 7. 16:53

이 같은 정보량을 누가 감당할 수 있을까?

블리딩 엣지로 토마스 핀천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작품을 페이지를 넘기기 전부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막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방황하고 허우적 될 생각을 하면서도 토마스 핀천의 정보의 바다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이 또 다른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분명하게 영향을 받은 것은 '아키라'의 네오 도쿄, '공각기동대', 히데오가 만든 '메탈기어 솔리드'예요. 우리분야에선 신과 같은 존재죠.

작품 곳곳에서 다양한 분야의 정보들이 쏟아진다. 단순히 미국의 대중매체, 문화적 트렌드를 나열하는 정도가 아니라 21세기를 누구보다도 최전선에서 접하고 있는 현대인의 정보 검색 수준으로도 벅찰 정도로 토마스 핀천은 이야기를 진행하면서 여기저기 다양한 정보의 파편들을 흩뜨려 놓았다. 엔트로피 좋아하는 작가답게 페이지 숫자가 증가할수록 무질서도가 함께 증가한다. 읽으면 읽을수록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도록 블리딩 엣지는 현대사회의 최전선에서 접하게 되는 수많은 문명의 흔적들을 다채롭게 나열하고 작품 속에 삽입하면서 무한하게 뻗어나가는 나뭇가지처럼 무질서하게 전개하였다.

닷컴 버블이라는 실제로 일어난 사회적 폭풍의 중심에서 탄생한 가상의 컴퓨터 보안회사 해시슬링어즈와 IT업계의 대부호인 게이브리얼 아이스의 존재, 그리고 미국 사회를 충격으로 빠뜨렸던 9.11 테러사건을 축으로 다양한 음모론과 비밀스러운 사건들의 연속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동시에 가상현실 S/W 인 딥아처의 세계를 펼치면서 핀천은 다시 한번 최점단 문명의 홍수 속에서 핀천식 무질서함으로 독자들을 사로잡기 시작한다.

하루가 흩뜨려놓은 것들이 다시 모이는 지점은 고기압의 일광이 허용하는 것보다 더 강렬한 비밀을 각자 간직한 백만 보행자의 드라마가 된다.

과학적 단어를 활용한 핀천 특유의 문장의 매력은 언제나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정보의 홍수와 무질서도의 증가로 감당할 수 없는 소설이 될 수 밖에 없음에도 블리딩 엣지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나갈 수 있는 이유도 이 같은 핀천 특유의 문학적으로 치환된 과학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재미있다 재미없다라는 감상을 하기 보다는 독특한 즐거움이 있다라고 이야기하게 되고 다시 한번 핀천의 작품 세계과 작품 스타일을 떠올리게 한다.

“그게 종교가 아니라고? 이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고 믿는 자들이에요. 그들은 마르크스주의 같은 경쟁 관계의 종교들과 성전聖戰을 벌이고 있어요. 세계는 유한하다는 모든 증거에 맞서서, 자원은 결코 고갈되지 않을 것이고, 더 많은 값싼 노동력과 중독된 소비자를 의미하는 세계인구와 마찬가지로 이윤은 영원히 증가할 것이라는 이 맹목적인 믿음으로요.”

실제의 역사적 사건과 가상의 음모론을 결합하여 탐정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작품이지만 당연하다는 듯 명확히 결론을 내리지 못 한 채 자연스럽게 마무리 마무리 된다.(사설조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평범한 아이의 엄마인 맥신 터노가 두 아들을 학교에 바래다 주면서 시작된 이야기는 여러가지 사건을 거치면서 소설의 마지막에는 아이들을 늦게 마중나오면서 마무리 된다.) 하지만 공백을 남긴 채 또는 물음표를 남긴 채 마무리 되는 이야기의 결말에 대해 특별히 의 의문을 가지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는 이야기의 매듭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전달되는 작가의 생각과 시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