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00권을 향해가는 원피스가 1권을 시작하던 때의 모습과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20년이 넘게 연재되고 있는 작품이다 보니 작품의 세계관과 설정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고 이야기의 볼륨이 커지고 확장되면서 엄청나게 쏟아지는 정보와 의문점들이 어긋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난잡해진 화면 구도에 조금씩 페이지를 넘기는 것조차 귀찮아지고, 필요 이상으로 길어지는 스토리와 에피소드마다 반복되는 클리셰에 지루함을 느끼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초반의 다이내믹하던 연출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심지어 난잡하게 펼쳐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원피스가 재미있어서 읽는다기보다는 지금까지 보던 작품이니 계속보는 관성의 법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원피스에 대한 기대감과 앞으로 느끼게 될 두근거림에 대한 기대치는 변하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의미에서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지닐 수 밖에 없었던 와노쿠니에서도 말입니다.

와노쿠니의 에피소드는 어찌보면 원피스가 가지고 있던 장점들이 희석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작품이 엉망이라도 언제나 쾌활!!!”이라는 특유의 밝은 이미지가 점점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루피의 친구들의 유쾌한 모험은 주변으로 사라지기 시작하고 지나칠 정도로 와노쿠니의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그동안 개연성 부족에 대해서는 꾸준하게 제기되어 왔지만 이번 에피소드에서는 한층 더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 생겨나고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실과 중요한 진실을 풀어나가는 것은 좋았지만 그 과정에서 필요이상의 내용 또는 불필요한 설정과 다소 무리한 전개도 있었습니다. 이미 정상결전 이전부터 조금씩 독자들 사이에서 표면화되고 있던 아쉬움들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원피스라는 작품을 감상하면서 느끼던 두근거림과 설레임이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원피스라는 작품도 변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96권에서는 95권부터 시작된 원피스 특유의 과거 회상이 시작됩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새로운 에피소드의 등장 인물들에 대한 과거는 뻔한 클리세로 뭉쳐 있지만 변함없이 강렬하게 다가오고 한층 더 묵직해진 이야기로 오뎅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면서 와노쿠니의 비극을 들려줍니다. 그렇다도 위에서 언급한 아쉬움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 원피스다운 모습을 보여주면서 다시 한번 페이지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듭니다.

퍼즐이 조금씩 완성되기 시작합니다. 골드 로져의 목적, 그리고 그가 그토록 원했던 포네그리프의 진실과 작품의 제목이자 최대의 수수께끼인 원피스의 정체에 조금씩 다가가기 시작합니다. 오뎅이라는 캐릭터에 그토록 집착할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게 되고 와노쿠니의 에피소드를 다시 한번 감상하게 됩니다. 작품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원피스라는 작품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즐거움이 있기에 96권의 이야기는 원피스에 대한 흥미를 높이고 두근거림을 느끼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해적의 전면전에 나서면서(정확히는 루피와 동료들) 와노쿠니의 오뎅이 아닌 원피스의 루피로 96권은 마무리 됩니다.이야기가 클라이막스로 달려가면서 아쉬움을 날려버릴 수 있는 통쾌함을 기대하게 됩니다. 동시에 유쾌함을 기대하게 됩니다. 엔딩 이후 왁자지껄한 휴식도요.

누군가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게 되고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납득하기 힘든 96권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와노쿠니의 에피소드를 다시 감상하게 만들어 준 재미있는 이야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