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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

불새 – 여명편

sungjin 2018. 11. 2. 15:07


일본 고대 왕국의 흥망성쇠를 배경으로 영원불멸의 상징인 전설의 새 불새를 둘러싼 생명의 영원한 신비를 다루는 여명편은 향후 길고 긴 시리즈로 이어지는 불새 연작의 시작이자 방향성을 제시하기에 손색없는 작품이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인류가 오랜 세월 동안 추구해오던 욕망의 본질에 가감 없이 접근하기 위해 인간사회의 추악한 단면들을 여과 없이 드러내었고, 결과적으로 불새라는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다룰 수 있었다. 잔인할 정도로 치열한 약육강식의 시대에 생존을 위해 현대사회에서 금기시되는 인륜을 무너뜨리는 행위들이 정당화 될 수 밖에 없는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끝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추악한 이기심과 욕망의 결정체를 배설하였고 한편으로는 무한한 사랑과 희망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쳐내면서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다루게 될 이야기들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를 예상하게 하였고, 그 무게에 침몰할 수 밖에 없는 주제의식을 가늠하게 하였다. 여명편에서 들려준 불새의 모습은 이후 시리즈 전편에 걸쳐서 동일하게 반복되었고, 다양하게 변주곡처럼 변화되어 같은 듯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불새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알레고리를 완성하게 된다. 그만큼 여명편은 불새라는 작품이 가져야 할 정체성을 확립하고 기본 틀을 마련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이정표를 제시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실험성이 짙었던 COM에 연재하면서 표현의 제약없이 자유로운 연출이 가능했고 작가가 시도하고 싶었던 다양한 실험적인 기법들과 파격적인 연출을 보여줄 수 있었다. 직설적인 패러디를 통한 독설과 한 발짝 떨어져서 웃음을 주는 누더기 표주박의 철학 등 이제까지 테즈카 오사무가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만화의 가능성을 증명하기 위해 자신의 역량을 쏟아 부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림과 글이 2차원의 지면 위에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익살기 넘치고 재치있게 풀어나가는 웃음 속에서도 파격을 시도하였고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여유로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어떤 잔인성도 허용될 수 있는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여명편은 시리즈의 출발점이지만 동시에 도착점이기도 하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불새 시리즈 전편에 걸쳐서 이야기되는 것들, 표현되는 것들이 이미 완성되어 있었고 준비되어 있었다. 이후 펼쳐진 에피소드에 대한 기대감을 높일 수 있었고 어떤 것을 보여줄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 동시에 계속해서 불새 시리즈를 보고 싶다는 강력한 중독성을 선사하였다. 여명편을 펼치자마자 시작되는 불새를 잡는 에피소드는 여명편의 마지막의 에피소드와 정확히 일치한다. 기나긴 세월을 통해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여명편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불새 시리즈 전편에도 그대로 적용 될 수 있는 이야기이며 테즈카 오사무의 작품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여명편은 불새 시리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을 성공적으로 시작하였던 것이다.